매일 다른 특별한 곳을 가는 것도 아닌데, 등산길은 항상 새롭다. 갈등이나 경쟁이 넘볼 수 없는 곳. 어제도 이 길을 지났으며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이미 생산의 문을 닫아버린 나와는 다르게 자연은 끊임없이 생명을 낳는다. 영원히 늙지 않는 것들과 항상 새로운 것들 사이에 끼여 우리들만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산 정상에 올랐다. 어제는 안개가 자욱한 소나무 숲이더니 오늘은 눈부신 햇살을 막아주는 병풍이 되어 우두커니 서있다. 햇볕에 바싹 마른 들마루는 나에게 안기를 권하고, 나를 산 식구로 받아준 어린 다람쥐가 선물을 기다린다. 늘 하던 대로 가방 속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베물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 안 가득 만족을 주었다. 먹고 남은 사과의 속 기둥을 조심스럽게 다람쥐를 향해 던져주었다. 잠시 움찔하던 녀석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쥐고 맛을 본다. 작은 입에 사과를 물고 가까운 상수리나무를 능숙하게 타고 올라간다.
하산길이다. 잎이 달린 나뭇가지가 머리 위에 툭 하고 떨어진다. ‘뭐지?’ 바닥을 보니 주변이 온통 도토리 나뭇잎이다. 가지 끝에 나뭇잎 몇 개랑 가운데는 파란 도토리들이 달려있다. 아직 온전하게 영글지도 못한 도토리들이 무언가에 의해서 강제로 바닥에 떨어진 듯하다. 발밑을 보며 지나는 길이 다채롭다. 작은 벌레들이 도토리 잎사귀를 먹는다. 풍뎅이를 닮은 벌레가 나의 발걸음 소리에 놀라 뒤집어졌다가 혼비백산하고 도망간다. 또 작은 가지가 잎사귀를 달고 선회하며 떨어진다. 올려다본 그곳에는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다람쥐가 참 영리하다. 그냥 도토리를 따서 떨어트리면 어디로 굴러가 찾기 힘들 것인데 나뭇가지 서너 잎을 단채로 떨어트리니, 그것은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앉은 자리를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그가 덜 익은 도토리를 따 먹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오니 과일 파는 트럭이 있다. 풋과일을 닮은 아오리 사과를 한 봉지 샀다.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무엇인가 투 둑 하고 떨어졌다. 아까 떨어진 도토리를 따서 주머니에 넣은 생각이 났다. 잠시 생각에 잠겨 도토리를 만지작거렸다. 하루에 몇 알씩 모으면 도토리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욕심을 부린듯하다.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람쥐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입으로 파란 도토리 껍질을 깠다. 떫은맛이 느껴진다. 물을 담은 플라스틱 통에 도토리 알을 넣어 냉장고 안 구석에 세웠다. 한통 가득 채우는 동안 떫은맛도 빠지면 갈아서 풀처럼 끓이면 묵이 되겠지. 작은 그릇에 담겨 찰랑거릴 묵을 생각 하니 벌써 입안에 그 맛이 느껴진다.
다음날 다른 사람의 수필집을 읽으며 도토리 거위벌레를 알았다. 등껍질은 거무스레하고 주둥이는 몸뚱이 길이와 맞먹는다. 내가 본 풍뎅이를 닮은 벌레 이야기 인듯하다. 글을 읽으며 앞에서 언급한 내 글들이 상상 속 허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들이 나열되어있는 책.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의 치열한 삶 이야기. 나비처럼 날아 내려오던 그 잎사귀에 달린 도토리들, 다람쥐의 간식이 아니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한 거위벌레의 본능이었던 것이다. 가을이 되면 튼실한 도토리를 골라 주둥이로 구멍을 낸다. 구멍을 내면 산란관을 밀어 넣고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긴 시간 주둥이로 나뭇가지를 자른다. 칼을 사용한 듯이 잘린 가지는 서너 장의 이파리가 프로펠러같이 달려서 헬기처럼 지상으로 안전하게 내려앉는다. 위치를 알려주는 목적이 아닌 알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용도이다.
저렇듯 치열한 종족 본능을 보이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주워간 것을 알면 어떨까? 갑자기 도토리 거위벌레가 머릿속에 구멍을 뚫는 것 같은 드릴 소리가 났다. 냉장고 구석에 서있던 도토리 알이 들어있는 물통을 꺼냈다. 베란다 밖으로 멀리 쏟아 버렸다. 도토리 속에서 익사한 거위 벌래 알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여러 날을 고생한 부모 벌레는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프고 나를 미워할까.
갈등이나 경쟁이 없는 산, 이것도 상상이었나 보다. 자그마한 거위벌레의 번식방법 하나로 그곳도 치열한 경쟁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치열하지 않은 곳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는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상상을 지키고 싶다. 치열한 곳은 현실의 사회이면 족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건강을 위해서 산행하는 그곳에서 조차 먹이경쟁에 치열한 모습이나 개체를 늘이려는 치열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틀리면 좀 어떻고 아니면 좀 어떠나. ‘작은 다람쥐가 풋과일을 좋아해서 도토리를 따는 것이다. 장난꾸러기 다람쥐가 나무 위에서 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떨어드리는 것으로 알고 싶다.
내일 또다시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내 눈이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산은 그대로의 산이다. 갈등이나 경쟁이 없는 곳. 현실에서 머리 아플 때 힘이 들 때 도피할 수 있는 곳. 영원히 늙지 않는 태양과 돌들과 바람 속에서 해마다 태어나는 아기 다람쥐들과 속삭이는 대화 속에서 엉클어져 있는 힘겨운 삶의 실타래를 술술 풀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냉혹하고 치열한 사실은 현실에서만, 등산길은 갈등이나 경쟁이 없는 곳, 내가 상상하는 아름다운 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