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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화 Aug 03. 2022

연에게 붙이지 못한 소원

                                연 

   꼬마는 전깃줄 아래에서 온종일 몸부림을 쳤다. 돌이며 장대며 손에 잡히는 대로 전깃줄을 향해 던졌다. 심지어는 돌에 실을 묶어 걸려 있는 연줄을 향해 던졌다. 제법 높이 던졌을까. 묶인 돌은 꼬마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아이는 이마에 혹을 달고도 지칠 줄 모르고 줄에 묶은 돌을 던진다. 놀던 아이들은 자러 가고 달 친구만 연을 비추고 있다. 달도 졸고 꼬마도 지친 듯 집으로 간다. 이제 진짜 이별인가 보다. 연은 아쉬워 양 날개와 꼬리를 연신 흔든다. 

  온몸으로 바람과 싸운 밤은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았다. 아이는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던지던 돌을 발로 차 버렸다. 다만 높이 날고 있는 연을 쳐다보며 아쉬워하고 있다. 눈앞에 태양이 하늘 길 따라 달려가서 석양이 되어 붉어진다. 아이는 연을 잊은 듯 구슬치기에 한창이다. 전깃줄이 꼭 쥐고 있던 손을 가만히 놓는다. 연은 석양과 친구 되어 서쪽으로 날아간다.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산길, 끝 동내. 앞에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뒤에는 남산이 보이는 그 옛날 우리 집. 메봉 산은 꼭대기만 남기고 사라졌다. 재개발로 강제 철거가 떨어진 어느 날. 아버지가 곡괭이를 들고 집 담벼락을 하염없이 쳤다. 벽돌담이 흔들리고 파란 대문도 담과 함께 넘어져 버렸다. 아버지는 울면서 집을 부수고 엄마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이삿짐이 실린 화물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엄마도 울겠지. 

  반백년이 지나 찾아온 이곳. 무엇을 찾아왔을까.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네는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산 아래 가득하다.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나는 보았다. 전봇대도 전깃줄도 사라진 낯선 곳에 남겨진 내 흔적을. 여기에는 내가 만든 신문 연이 아직도 날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든 연. 나에게만 보이는 연. 추억을 가득 품고 반평생을 기다려온 내 연. 연에게 붙이지 못하고 버렸던 소원 적힌 쪽지가 생각났다.

  이곳은 바람이 많아 연날리기에는 안성맞춤인 동네였다. 아직 어렸던 나는 오빠가 만들어준 연에 불만이 많았다. 부서진 파란 비닐우산은 내가 주워 오는데, 우산살과 대나무를 다듬지 못해서 나는 연을 만들지 못하였다. 오빠는 자기 것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내 연을 대충 만들었다. 오빠의 연은 서 있는데도 하늘을 용처럼 날았고, 내 연은 줄을 잡고 뛰어야 겨우 날았다. 연은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다가 땅에 퍽 꼬꾸라진다.

   오빠가 없는 어느 날 책상 아래 있는 재료를 꺼냈다. 신문지를 네모로 잘라놓고 밥 한술 떠왔다. 오빠가 다듬어 놓은 대나무살 하나를 신문지 가운데 세우고 다른 하나는 양 신문지 끝에 밥풀로 붙였다. 신문지 끝에 붙은 대나무살을 활처럼 휘어 실로 매었다. 멋지게 날개도 달고 꼬리도 길게 달았다. 엄마 바느질 통을 열었다. 며칠 전에 가득 감아놓은 하얀 이불 실을 통째로 꺼냈다. 오빠가 하는 것처럼 연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내어 실을 걸고 수평을 잡아서 실 줄을 매었다. 

  연은 많이 달리지도 않았는데 스윽하고 하늘로 치솟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하늘을 날았다. 얼마를 잘 날다가 훅 불어오는 바람에 연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돈다.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길에 연은 전깃줄에 걸려버렸다. 갖은 방법으로 실을 풀려하였으나 전깃줄은 너무 높았다. 매달린 연에 미련을 못 버린 듯. 하루 종일 동동 뛰던 나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동동 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움켜쥐려고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세월 지나가면 지금 이곳처럼 모두 사라지고 손에 쥘 수 없는 기억만 남을 것을. 주머니 속 소원 적은 편지는 연에게 붙여보지도 못했는데, 날아간 연이 못내 아쉬웠던 어린 시절. 지금 저 하늘에 보이지 않는 연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나. 신문지 한 장으로 존재하였다가 연이라는 이름으로 날다가 간 세월. 그는 괴나리봇짐도 노자 돈 넣을 주머니도 없이 떠났다. 아니, 떠난 듯 보였으나 기억 속에서 나의 추억 보따리를 안고 내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너 소원이 뭐였니?’

   연은 내가 붙이지 못했던 소원이 궁금해서 물어온다. 내 소원이 무엇이었을까. 너무 많이 빌어서 이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소원을 빌고, 커서는 하나님에게, 부처님에게 끝없이 소원을 빌었다. 온통 해 달라는 소리뿐. 나에게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나 보다. 나는 잃어버린 소원 대신 연에게 고맙다고 마음으로 외쳐본다. 그 시절에 네가 없었으면 이곳에서의 추억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을 것이야. 소중한 기억들을 챙겨서 낯선 길을 따라 내려왔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아이들이 소원을 빌려고 창문을 연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달을 찾아 올린 눈에는 달보다 먼저 연이 날고 있다. 아마도 저 연은 내가 삶을 다 살고 공기가 되어 날아오를 때 내 손을 잡고 날아갈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살아있어 아름다운 기억이 늘어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작게나마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얘들아, 니들 소원이 뭐니?

신문으로 만든 가오리연을 띄우고 싶었는데 없네요. 아마도 만들어 띄워서 사진을 찍어야할것같아요.(나중에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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