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 되면 꼭 먹는 봄나물과 그 이야기
봄이 되면 식탁에서 봄나물을 자주 보게 된다. 차디찬 겨울을 버티고 난 나물들이 봄에 제 향과 맛을 멋지게 뽐낸다. 봄에 먹어야만 가장 맛있는 나물들, 냉이부터 시작해서 쑥, 두릅, 달래, 돌나물, 참나물, 나열하자면 시간깨나 걸릴 일이다. 향긋한 봄나물로 여러 음식을 해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단단하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봄나물은 그렇게 우리를 살려낸다.
유난히 좋아하는 봄나물 음식이 몇 있다. 직접 만들어 먹은 적은 없고 전부 엄마가 해준 것들이다. 어쩌면 봄나물이 좋은 것보다 엄마의 손맛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3월부터 4월까지 밥상에 꼭 올라오는 음식이 있다. 미나리 무침인데, 다른 반찬 없이도 미나리 무침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우습게 비우는 게 아빠와 나다. 아빠와 내가 하도 좋아하니 엄마는 늘 미나리 무침을 만든다. 그냥 먹기도 하고 심심하다 싶으면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한다. 분명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일 텐데 엄마는 그 모습에 신이 나서 매일 밥상에 미나리 무침을 올린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꽃샘추위까지 물러나고 나면 엄마는 시장에서 미나리를 찾고 나는 밥상에서 미나리를 찾는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콩나물 향이 진하게 풍기는 날이 있다. 엄마가 콩나물밥을 한 날이다. 콩나물향이 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있다. 달래 간장이다. 콩나물밥은 그저 거들 뿐이다. 진한 간장의 향이 무의미하게 코끝을 찌르는 향긋한 달래가 메인이다. 향긋한 달래를 간장에 넣는다. 깨소금도 조금 넣어주면 더 좋다. 식감 좋은 콩나물밥에 달래 간장 듬뿍 넣어 잘 비벼 먹으면 반찬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엄마가 쌀밥을 한 날에는 김을 내어준다. 김에 밥 얹어 달래 간장 조금 넣어주면 그것 역시 반찬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엄마의 달래 간장은 별 게 없다. 그저 좋은 달래를 사서 가족 먹일 정성만 담으면 끝난다.
달래 간장 넣어 비벼 먹은 밥그릇은 설거지가 힘들다. 괜스레 엄마에게 잘 닦이는 수세미는 없냐 묻는다. 엄마는 뜨거운 물로 하면 잘 닦인다 말하고 TV로 시선을 돌린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배우가 직접 딴 돌나물로 무침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봤다. 잘 씻은 돌나물에 초장을 둘러 몇 번 집어 먹더니 결국 먹던 비빔밥 그릇에 넣어 함께 비벼 먹는다. 막상 앞에 있으면 흥미가 생기지 않는 반찬인데 왜 TV에 나오는 걸 보면 군침이 도는지 알 수 없다. TV를 본 후 엄마에게 돌나물 무침을 해달라고 말한다. 엄마는 돌나물을 사와 씻어 놓을 테니 양념은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한다. 초록창에 레시피를 검색한 후 사진이 제일 괜찮아 보이는 게시물을 고르고 따라 만든다. 맛있다. 입안에 퍼지는 향과 아삭함이 매력적이다.
엄마와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밥그릇을 비운다.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가니 돌나물 무침이 만들어져 있다. 한 번 더 맛있게 먹는다.
가만 보면 정말 내가 봄나물을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봄나물이 좋은 건지 맛있다고 하면 며칠을 식탁에 올리는 엄마의 마음이 좋은 건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확실한 한 가지는 엄마의 손맛이다.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면 생각난 김에 안부나 한번 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