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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22. 2022

한지로 접은 비행기

인천아트플랫폼 | 2022.09.30 - 11.27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살아갑니다. 학업, 결혼, 취업 등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지는 국가를 옮기는 행위는 유학, 이민 등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민(Immigration)'은 외국에서 영구적이거나 오랜 기간 살 의도로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인구이동으로 정의됩니다. 유엔인간정주계획에 따르면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행위 또는 그 타국에 정착 터를 잡고 살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쓰이는 정의의 경계는 외국에 이주 목적으로 정착한 경우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주권을 얻거나, '장기 체류 비자를 받아 거주하지만 본인이 원할 때 언제든지 영주권을 취득 가능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의 역사는 한국의 경우 공식적으로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로 향한 121명을 시작으로 오늘날 120주년을 맞았습니다. 현재 2022년 재외동포는 750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이민역사의 시작점인 제물포항이 위치한 인천광역시는 인천아트플랫폼의 <한지로 접은 비행기>를 통해 한국의 디아스포라 현황을 살펴보고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하전남, <일본에서 태어난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세요>, 2022
하전남, <당신의 얼굴을 빌려주세요>, 2017
민영순, <양쪽의 현재> 중 일부, 2018

이 전시에는 예술가들 중에서도 초기 이민자라 불릴 수 있는 백남준, 박이소의 작품부터 시작하여 입양 절차를 통해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여 살게 된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렇게 시간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초기 이민 작가들의 시각과 동시대 작가의 시각의 변화를 폭넓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1층과 2층을 채운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들은 민영순 작가의 <양쪽의 현재>, 다프네 난 르 세르장 작가의 <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 그리고 이영주 작가의 <수치스러운 파랑>이었습니다.

먼저, 민영순 작가는 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며 식민주의 역사, 디아스포라 역사 속 여러 정체성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정치적 입장을 정립하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졌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양쪽의 현재>(2018)는 작가가 직접 1988년 북한 비무장지대 구입한 엽서와 1995년 남한 판문점에서 구입한 엽서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입니다. 로로 길게 엽서를 잘라 이를 번갈아 붙이는 작업을 통해 엽서에 등장하는 남한과 북한의 모습들을 비교하도록 하였습니다. 작가가 북한 비무장지대에 방문했던 1988년은 남한에게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냉전의 해빙을 가져오는 평화의 해였으며 북한에게는 정권 수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습니다. 전 세계는 올림픽을 통한 평화를 바랐지만 남한과 북한은 오히려 올림픽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불신의 뿌리가 깊어지고만 안타까운 해이기도 합니다. 남한의 판문점을 방문한 1995년은 냉전이 끝난 뒤 빠르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WTO가 수립되고, 한반도는 광복 50년과 분단 50년을 맞이한 해입니다. 93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후 김정일 정권이 북한에 들어서며 냉랭한 관계가 유지되어 오다 95년에 유래 없는 대홍수를 맞은 북한이 350만 명이 아사하는 식량난이 오게 되었고, 남한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남북관계의 폭넓은 개선을 위한 주춧돌이 마련된 해이기도 합니다. 두 국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이 일어난 1988년과 1995년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현재의 남북한 관계와 그 사이 얽혀있는 탈북인, 이산가족들이 가지는 그리움과 슬픔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또한 한국전쟁이 종전된 시기에 태어난 민영순 작가는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태어나면서부터 관찰하고 경험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은 서로의 땅을 밟을 수 없지만 한국계 미국인이기에 좀 더 자유로운 신분으로 북한과 남한을 방문할 수 있었던 그녀는 2017년 미국에서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였을 때 어떠한 마음이 들었을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케잇 허스 리, 상:  <이것은 책이 아니다> | 하:  <예술가와 예술가의 책> | 좌우: <수호자들>  

두 번째로 다프네 난 르 세르장(Daphne Nan Le Sergent) 작가는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지정학적 경계와 잠재적 내부 분열을 참조하여 분리 는 분열 개념에 대한 예술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2층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녀의 작업 <우리 내면의 인도를 향한 여행> (2019)는 14분 길이의 영상 작업으로 유럽의 정복자들이 동인도에 다다르게 된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여정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신대륙을 찾아냈습니다. 이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면서 여기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인디언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상 속에는 인도 남부 언어인 타밀어로 아메리카 원주민 칼리나족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정글을 헤쳐나가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영상 속 모습은 사운드트랙의 실체를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의 차이를 불러일으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인도나 동아시아의 열대 정글의 느낌과 어울리는 오리엔탈적인 사운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래는 본디 아메리카 원주민의 곡조이고 언어만 타밀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숲 속이 아메리카의 대륙의 모습인지 아니면 작가의 또 다른 혼동 장치로써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공간인지 고뇌하게 됩니다. 작가가 연구하는 지정학적 경계에서의 인지의 분열이 소리와 영상의 충돌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주 작가는 복합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현재 캠브리지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거주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2층 통로 끝에 자리한 그녀의 작업 <수치스러운 파랑> (2016)은 작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주하며 꾸었던 꿈을 바탕으로 만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파란 눈을 가진 딸을 낳은 아시아 여성 아기가 낯선 신체를 가졌기에 가족에게서 무시당하게 됩니다. 이에 엄마와 딸 사이의 역할에서 고뇌하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작품의 새로운 주인공이 됩니다. 푸른 눈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자성을 모두가 순종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숨기고자 하지만 자기 내면의 '푸름'을 지울 수 없으며, 다음 세대에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이민 2-3세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합니다. 이민 2세대와 3세대는 겉모습에서 동양인의 특징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이나 행동들은 이민 1세대와 달리 해당 국가의 영향이 깊게 박혀있을 그들은 수많은 인종차별, 가정과 사회의 다른 면모들을 겪으며 성장하기에 가장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뇌를 하게 될 것입다. 이 고뇌 속에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면모와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신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과정이 바로 <수치스러운 파랑>이라 생각합니다.

박이소, <이그조틱, 마이노리티, 오리엔탈>, 1990
이영주, <수치스러운 파랑>, 2016

이 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작품, 글렌 모리와 줄리 모리의 <우리가 잃은 것들>(2019)에서 나오는 100명의 해외 입양아들이 말하는 버려짐, 단념, 상실, 트라우마, 회복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과 인생의 경험들을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18명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전시장에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민 1세대부터 2-3세대까지 폭넓은 세대들은 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삶을 서로 다른 예술로 풀어내고 있 전시장에서 작가들 이민자로서의 공유하는 자신의 감정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다문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에도 수많은 이민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요즘,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해외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감정적 굴곡들을 경험하며 우리가 새로운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이민을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입니다. 

 



전시 제목: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

전시 위치: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인천아트플랫폼)

전시 날짜: 2022.09.30 - 11.27

관람 시간: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주최: 인천광역시

주관: 인천문화재단-인천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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