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부터 나는 엄마들 사이에 꽤 유명한 피카부라는 아동복 브랜드와 함께 하고 있다. 이성적인 운명론자인 나에게 이 브랜드와의 만남은 '운명' 그 자체였다.
지난 10월 말, 5시간 반의 수술을 하고 병실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연락온 것을 확인했을 때, 나에게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바로 이 브랜드의 대표였고, 심지어 그녀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내가 막 수술실에 들어간 시간이었다.
퍼블리에서 내 글을 보고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그 용기와 연락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당장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알렸다. 기다리겠다는 답을 듣고 병원에 물어보니 2박 3일이면 퇴원하면 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들 조금 불편하지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일주일 뒤에 화상 미팅부터 해보기로 했다.
화상 미팅 후에 판교에서 일정을 잡아서 만났는데, 그 날 우리 둘 다 느꼈던 전율에 대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질 때 그녀가 나를 위해 준비했다며 건낸 꽃다발이, 내가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한 꽃나염의 작은 천카드 지갑과 거의 같은 꽃들과 컬러였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인 운명론자인 나에게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운명이야!'라고 느끼게 해줬고, 그녀도 '저도 운명론자라 운명을 믿는데...!'라면서, 앞으로 함께 도전하고 배워나가고 싶다며 계속 함께 하자고 해줬을 때 '이건 진짜 운명이야!'라고 행복한 도파민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함께 많은 도전과 변화를 마주하고 있고 모든 경험에서 얻는 배움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피카부를 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올해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였던 상하이 2024 CBME 박람회가 드디어 열렸다.
상하이 2024 CBME 박람회 참가를 위해 7월의 한 날 이른 아침 시간,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1시간 반 정도 비행 끝에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에만 1시간 반 정도를 사용하고 다시 행사장 근처에 잡은 호텔까지 1시간여를 이동하는 동안, 상하이의 무더운 날씨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동남아 보다 덥다는 것에 출장을 함께 간 사람들 모두 동의할 정도로 매서운 무더위였다. 호텔에 짐만 두고 바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공포 그 자체였던 여름 무더위를 뚫고 행사장에 겨우겨우 도착을 했는데, 행사장 내부는 그 어느 부스도 형태를 갖춰보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아침 8시부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열어줬다고 했는데, 나가라는 시간이 오후 8시였다.
겨우 12시간 남짓만에 이 모든 셋팅을 다하라고??? 다음날 아침에는 마무리 셋팅이 2시간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99% 상태의 셋팅이 되어야 하는 가혹한 상황이었는데, 불가능할 것 같고 가혹하기 그지없는 이 일을 중국인들은 해내고야 말았다.
우측맨 위를 보면 8개 관 중 1개로 되어 있는데, 저렇게 된 부분이 아래 층에 또 있다.
대형 게임사에서 유명한 게임들을 오래 담당했었기에 나름 큰 행사도 많이 해보고 참여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중 이번 CBME 박람회가 가장 컸고 이런 엄청난 공간은 처음이었다. 총 16개 섹션이 있는데 1개 섹션이 코엑스의 가장 큰 홀보다도 더 컸던 것 같다.
이 엄청난 공간에 몇 십만의 사람이 와서 우리 브랜드를 본다고? 짜릿한 전율이 흐르면서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성취감과 설레임에 그저 신이 났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정한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peekaboo는 대명사라 쓸 수가 없어서 hipeekaboo로 상표권을 낸지라 브랜드명이 다르다.
두리번 거리다가 대각선 방향으로 우리 부스를 열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멍하니 우리 부스의 로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구나, 영광의 순간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감격을 했다가, 회한에 젖었다가, 아이처럼 신났다가, 두려움도 느껴지는...희로애락이 수시로 바뀌며 담기던 그녀의 표정에는 10년의 시간이 모두 존재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많은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차마 그녀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 만의 오롯한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저 열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경험하고 있는 영광의 순간을 가만히 지켜봤다.
좋은 파트너이자 서로 의지하는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한 그녀에게, 아이 넷을 낳으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타협하지 않아 온 그녀의 10년이 모두 보상 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한다는 것, 어찌보면 그 단순한 명제가 실제로는 모든 비즈니스에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은 그걸 해냈고, 그것은 미련함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기에, 스스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자부심이 몰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의 그녀는 멋있었고, 부러웠다. 왠지 나의 시작이 늦은 것 같아서, 뒤쳐진 것 같은 조급함도 생겼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나답게, 나의 10년 또한 다양한 경험과 스킬을 통해 지금처럼 올라운더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렇기에 이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할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더 큰 영광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은 각자의 그릇과 역할이 다른 것이니까 말이다.
영광의 순간은 자격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한국에 돌아와서 출장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목격한 그녀의 영광의 순간과 그걸 본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느낀 것이 맞다면서 자신의 순간을 알아봐준 것에 기쁨을 숨기지 않은 그녀는 한가지 더 자신이 느낀 감정을 꺼내놓았다.
의외로 가장 오래토록 머문 감정은 '감사함'이었다고 했다. 감사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많이 떠올랐다고 했다.그동안 만났던 고객들의 얼굴, 함께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거래처 분들, 가족들 등 너무 다양한 얼굴들이 뒤죽박죽 떠오르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더 잘하지 못하면 안되겠다는 압박감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얼굴들 중에는 당연히 내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타인의 영광의 순간은 지켜봤다'는 내 소회에, '그 순간을 알아봐줘서 고마워, 이 영광은 찌니가 같이 만들고 있는거야. 찌니가 있어서 이런 순간이 온거야. 옆에서 지켜본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한거야 이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함께 일해 온 상사들, 거래처들 모두 나에게 '잘했다, 수고했다'는 말은 많이 해줬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이 친구와 나의 운명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어져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성공의 문은 이미 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이렇게 또 하나 찾아냈다.
나는 그녀가 목표로 하고 있는 5년, 10년 뒤의 모습을 당연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우리가 도전하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와 해결 방법, 실험과 시도 등에 대해 기록을 꾸준히 하고 있다. 나중에 책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는 멋진 이야기, 성공을 했으니 말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브랜드가, 기업이, 조직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이 될 노하우들을 공유하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의 근간이 될 스토리를 브런치에도 간간히 올리려고 한다. (그녀의 허락은 이미 받았다! >_<)
그것은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엄마라서 꿈을 포기하는게 아니라 엄마라서 꿈이 열릴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찾으며 돕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우리 둘 다 서로 타인의 영광의 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맞이하는 영광의 순간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