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암 진단 받았을 때, 어땠어?

암 환자에게 하고 싶었던 그 질문, 제가 답할게요. "암문답" 1화

by 찌니

암 환자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 변화는 일반적으로 심리학자 쿠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제시한 ‘5단계의 애도 과정(5 Stages of Grief)’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다섯 단계는 반드시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에 따라 순서가 바뀌거나 특정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한 번 경험한 단계가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고 한다.


1단계: 부정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초기 반응입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 없어.”와 같은 생각으로 충격과 혼란을 느낍니다.


2단계: 분노

부정을 넘어서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표출됩니다.
자신, 타인, 상황, 심지어 신에게도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는 감정이 특징입니다.


3단계: 타협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협상하려는 시도입니다.
종교적인 기도나 약속을 통해 상황을 바꾸려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만약 이 일이 해결된다면 앞으로 착하게 살겠어요.”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4단계: 우울

현실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깊은 슬픔과 절망감이 찾아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은 것처럼 느끼며, 고립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제 모든 게 끝났어. 희망이 없어.”라는 감정이 대표적입니다.


5단계: 수용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하는 단계입니다.
“이 일은 내 삶의 일부였지만, 이제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


나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비슷한 단계를 경험했다. 아마 대부분의 암 환자나 그 가족은 이와 같은 단계를 경험할 것이다. 다만, 각자 어느 단계에 더 머무르게 되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이 암 선고를 받은 후 한달 안에 격렬하게 발생했었다. 나머지 기간 대부분은 수용을 통해 희망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힘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또한, 5단계의 애도 과정에서 이야기 했던 <한 번 경험한 단계가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항암제를 바꾸게 된 시점과 항암을 끝낸 후 수술 방향이 결정되었을 때 다시 한번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의 감정이 몰려왔었다.


나에게 가장 강렬한 감정은 첫 감정인 '부정'이었다.


부정은 암 진단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이다. “이게 맞아? 왜? 내가?" 현실감이 사라지고 멍해지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설마 나한테 암이 생겼을 리 없어.”라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진단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심각성을 축소하려고 한다고 한다.


현실 감각이 없기 때문에 눈물도 나지 않는다. 큰 망치로 한대 맞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된다.

"어떻게 치료하면 되나요? 살 수는 있나요?" 그런 미래지향적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나만 해도 "그럼 회사는 어떻하죠?"라는 질문을 해서 선생님에게 혼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동네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바로 유방암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날 초음파를 하다가 바로 조직검사를 진행하시더니 "환자분, 최소한 2기말의 유방암 입니다. 조직검사 결과지 보지 않아도 확실해요. 제가 유방암은 정말 많이 경험했고, 환자분은 빨리 치료 받아야 합니다. 젊어서 너무 위험해요."라는 원장님의 암 선고를 들었다. 그 때 내 옆에는 엄마와 여동생이 있었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병원을 나선 이후의 기억은 동생이 남편에게 전화했다는 것, 아빠가 우리집에 와서 울었다는 것, 엄마가 울고, 동생이 울고, 나도 울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기억은 소리로 남아있다. 급하게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 비밀번호가 입력되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주저앉으며 펑펑 울던 남편이 절망적인 모습이 기억 난다.


왜? 왜 니가 이런 병에 걸려?
나쁜 놈들 다 잘사는데!
왜 니가 이런 병에 걸려?


남편이 절규처럼 외치던 그 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충격을 받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리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단계에서는 AI 마저도 충격 받을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도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암 환자들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암 사실을 말하는 것이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이미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가족이 충격 받을 것이 예상되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는 것이다.


정작 나 자신의 부정의 단계는 좀 짧게 지나갔다. 의사 선생님의 이렇게 확신하는 피드백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보통의 의사 선생님들은 확실한 결과에 도달할 자료들이 없다면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이야기 하지 않고, 애매하게 이야기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한달 넘게 부정의 단계를 겪었다. 남편은 아산병원에서 확실하다는 결과를 듣고 첫번째 항암을 할 때까지도, 매일 니가 암이면 신은 없다면서 온갖 신이라는 신은 다 욕하다가, 내가 잠든 것 같다고 생각되면 '아내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라며 신이라는 신에겐 다 빌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든든했던 남편의 무너지는 그 모습들이 나에게 '부정'이란 감정이 임팩트 남겨준 것 같다.


첫 항암과 함께 분노, 타협, 우울의 감정이 찾아왔고 미친듯이 많이 울었다.


젊은 암 환자고 공격적인 암의 성질 때문에 상당히 빠르게 치료 과정에 진입하게 된 나는 첫 항암을 동네 병원에서 암이라는 선고를 들은지 3주 정도 만에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다소 멍하게 있었다면, 첫 항암의 두려움과 다양한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리냐, 나를 일하면서 괴롭게 했던 누구누구 때문이다' 등으로 분노했다가, '나을 수만 있다면 착하게 남들 도우며 살게요'하며 타협했다가, '항암이 더 힘든데, 이걸 한다고 나을 수 있을까? 그냥 덜 아프고 죽는게 낫지 않을까?'하며 우울했다.


매일 울어서 눈은 짓무를 지경이었고 늘 밝고 당당하던 나의 무너지는 모습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계속 누워서 잠만 자려고 하고 잘 먹으려고 들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만 한 첫 항암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나는 현재 상황을 수용하게 되었다. 남편 덕분이었다.


첫 항암 때 나는 당황스러운 부작용들을 매일 새롭게 경험했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으면서 그냥 항암을 중단하고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한창 젊은 남편이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연예 1년 반, 결혼 1년 반, 겨우 3년을 함께 했다는 이유로 한창 때인 남편이 아내의 병수발을 하느라 자기 시간도 없는게 너무너무 딱했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고 싶다는 나에게 그게 진심이면 자기를 위해서 살아주겠다고 하라면서, 자기를 나쁜놈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도 이혼하겠다고 하면 그냥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 그날 밤 내내 잠이 들 때까지 사랑한다고 해주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완전 관해(암 세포가 아예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항암을 최선을 다해서 받았다. 미각이 마비되어서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울면서 밥을 먹었고, 단 한번도 항암 일정이 밀리지 않고 항암을 해냈다. 고통스러웠던 첫 항암 후에 확연하게 암 사이즈가 줄어들면서 효과가 있다는 것에서 용기를 얻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암 사이즈가 줄어들면서 부분 절제로 끝날 수도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러다가 항암이 끝나고 수술 방향을 잡을 때, 다시 한번 나는 분노, 타협, 우울의 감정을 폭풍처럼 느끼게 되었다. 항암의 성과는 좋았지만 여전히 암 사이즈가 크고 암의 공격성을 고려했을 때, 전절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젖꼭지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마음이 분노와 함께 찾아왔다.


갑자기 극도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 다음날 엄마가 잠시 장을 보러 나간 사이, 나는 당시 살던 아파트의 엘레베이터를 올라탔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몰려왔다. 올라가는 동안에 그동안의 고생이 떠올랐다. 같이 고생해준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왜 죽어야 해?
그 고생을 했는데 살아야지!

다시 1층을 누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잤고, 일어나서 밥을 열심히 먹었고, 가족들에게 수술을 잘 받고 오면 뭘 사달라, 뭘 해달라 어리광을 부렸다. 다양한 약속을 받고 수술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 5가지 감정은 계속적으로, 작년에 완치 판정을 받기 전까지도 문득 한번씩 찾아왔다.


수술을 받고 나서 너무너무 아파서, 수술 자국이 너무 끔찍해서, 감정의 폭풍이 또 한번 휘몰아쳤다. 복직을 하고 나서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감정의 폭풍이 또 찾아왔고, 타목시펜을 5년 더 먹어야 한다고 했을때도, 난소암이 의심된다고 수술을 했을 때도, 수술 후에도 난소에 혹이 있다고 또 수술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도 수도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늘 함께 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혹시 재발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만약에 그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바로 감정의 폭풍이 따라오곤 했다. 나는 건강에 대해서는 감정 컨트롤이 도통 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이렇듯 암 환자는 '암' 앞에서는 감정의 폭풍 앞에 약자로 놓여있다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암 환자나 그 가족에게 '위로'를 하는 것에 좀 더 세심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암 환자나 그 가족에게 어설픈 위로는 독이다.


자기 자신도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암 환자에게 '요즘 그 암은 별거 아니래', '가슴이 없어도 사는게 중요하지', '생존율이 99% 더라', '초기는 괜찮데' 등등의 위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행 기수와 상관없이 암은 암이다. 쉬운 암, 덜 위험한 암 따위는 없다. 생존율이 99%라고 해도 못사는 1%가 나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게 암 환자다. 가슴이 없는 거, 자궁이 없는거, 난소가 없는거, 수술 자국이 생기는 거 등등 살기 위해 견뎌야 할 부가적 요소 같지만 본인에게는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여성성을 잃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아픔이다.


암 환자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너는 괜찮냐', '너도 힘들겠다', '너도 혹시 모르니 검사 받아봐라' 이런 이야기들이 그들을 챙겨주는 게 아니라 상처가 되는 말이 된다는 걸 알아두자.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상대가 여겨서 부담이나 힘든 감정을 덜었으면 하는 의도겠지만, 당신은 위로를 할 생각이겠지만, 상대에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암 환자나 그 가족 입장에서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당신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위로법은 '얼마나 힘들지 내가 감히 어떻게 알겠어. 그래도 힘내주라. 꼭 이겨내줘. 응원할게. 필요할 때 편하게 연락줘. 너를 위해서 기도할거야. 꼭 이겨내줘. 힘내줘서 고마워.' 같은 응원과 애정의 메시지나 따뜻한 스킨십이다.




이 글은 암 환자나 그 가족이 되면 궁금한게 많은데, 같은 입장이라 조심스러워서 질문을 하기 어려워 한다는 것에서 쓰게 되었다. 그들이 주로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추려서 '암문답'이라는 시리즈 글로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라면, 당신들이 겪는 지금의 감정들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오래 있어야 하는 감정은 수용의 단계를 통한 희망이라는 것도 말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암과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주변에 혹시 암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지인이 생기게 되었을 때, 부디 어설픈 위로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 건강하길, 건강해지길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귀를 기울이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