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일들도 결국 멀리서 보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것의 연속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생은 무료한 일상의 연속이기도 하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면, 언제 몇 월 몇 시에 사고가 났다고 치자. 사고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인생은 철저히 사고를 당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오늘 사고를 당할지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고 사고와 대면함으로 그는 ‘인생’이라는 녀석이 지니고 있는 뻔뻔함과 무료함을 이제야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항상 가는 M 도서관은 항상 그 자리에 똑같은 사서가 일을 보고 있는, 인생의 지루함과 무료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갈 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모여서 특정 책에 대해 토론하고 왁자지껄한 대화가 오가지만, 다음날 오면 다른 부류의 아주머니 혹은 아이들이 교사의 지도에 따라 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모여 무언가를 항상 하는 걸까?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 온 사람이 어제 온 사람과 일면식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즉 A라는 사람은 B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지만 A’라는 사람은 A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B라는 사람은 B’와 D’ 다시에 있는 누군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인생이라는 큰 연못에 갇혀 누군가를 알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모르는 재미없는 하루를 이어가는 걸까? 영화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우리 인생을 좀 더 재밌게, 혹은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시트콤같이 재미있고 웃긴 일상을 늘 꿈꾸며 살아가지만 시트콤의 결말은 항상 현실의 냉정한 면을 부각시키듯 삶이란 놈은 뻔뻔하면서도 지루한, 그러나 동시에 유쾌함을 지닌 누군가일 것이 분명하다. 찰리 채플린은 사람의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희극과 비극 사이 또 다른 희극과 또또 다른 비극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끝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갈망하며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뜨거운 사막 어딘가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여정도 분명 울림이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오아시스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 우리가 걷는 지금이 과거가 되며 과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무료한 일상은 우리에게 늘 적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최근 일본 규슈를 방문했는데, 후쿠오카에는 ‘다자이후 텐만구’라는 신사가 있다. 일본은 800여만개의 신이 존재하는 나라이고, 신사는 그 무엇보다 일본의 문화와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장소인데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는 본 신사를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다리가 있다. ‘타이코바시’라고 불리는 붉은 구름다리인데,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본 다리를 건너면서 필자는 결국 지금 이 순간도 과거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가 인간의 인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1,2초 이전의 시간도 과거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답이 없고 막막한 인생이지만은 이러함에도 우리는 아직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만약 미래까지 알았으면 삶이 주는 유종의 미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가다보면 어느덧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래의 다리’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