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일 : 22.05.22
나에게 당연한 이 '자유'는
누군가가 오랜 시간 그 방을 나가지 않으며
피눈물로 이뤄낸 소중한 결과물
-노랑의 한줄평
예전 더 헬멧의 유튜브 중계는 보긴 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는 첫 관람! 캐스팅보드도 찍지 못하고 허겁지겁 입장할 만큼 우당탕탕 첫 관극이었는데 확 몰입할 수 있는 극이었고 울면서 나왔다.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공포의 대상인 백골단에게는 사실 동료의 부모님을 위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마음도, 울림을 주는 시를 반가워할 마음도, 음악과 예술을 즐기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선후배를, 친구를, 잠시 스쳤던 멋있던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 앞에는 그들의 일이 있다. 시위를 제압하는 전경이라는 일. 그런 일이 일상이 된 백골단은 처음에는 낯설고 인간적인 마음이 남아있어도 점차 일이 너무 당연해지고 그들이 일을 위해 행하는 폭력 또한 익숙해져 간다. 너무 익숙해져서 백골단이 일상이 된 그들에게는 그들이 행하는 폭력이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닌 제3의 무언가를 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 울타리 밖의 무언가를 향한 공격. 그래서 울타리 속의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어도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냉정하고 심지어 잔인함에서 성취를 맛보는 것 같기도 했다. 두려워하면서도 서서히 안심하던 서점 주인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압이 일상이 된 그들에게는 마치 포위망 속에서 이리저리 뛰는 초식동물을 보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순간을 위해 서서히 동물을 몰아가는 듯한 그런 긴장감.
반대로 그런 폭력에 젖어 들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우리 학교 선후배 동기들, 옆에 있는 누군가, 동생이 생각나는 젊은 친구들 등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다.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전경에게 잡힐 것 같으면 도와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로 인해 위험을 벗어난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푸는 용기.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용기와 따뜻함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게 바로 그들이 꿈꾼 자유가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사회.
미리 보았던 중계를 통해 싸우는 씬이 있다는 걸 알고 갔음에도 생각보다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멋있는 선배가 전경에게 크게 맞는 부분이 하필 내 눈앞에서 일어났는데(1열이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었다. 이것이 연극이라는 걸 알고 싸우는 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런 폭력이 두려운 내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꿈꿨던 자유는 실현되었고 너무 당연해졌다고 또 한 번 느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다는 그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작품. 차례로 스몰룸과 룸알레포도 볼 예정인데, 그래도 너무 울고 힘들어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봐야겠다. 이 방을 나간 적이 없다는 그 단단한 말이 아직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