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예비 천사 수련원’은 승급을 앞둔 공기요정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투명한 공기 막에 갇힌 요정들은 1단계부터 9단계까지의 고된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10단계인 **‘진실한 사랑’**의 관문만을 남겨두고 있었죠.
하지만 구석에 앉은 한 공기요정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그는 벌써 이 마지막 시험에서만 19번을 떨어졌고, 이번에도 통과하지 못하면 영영 천사가 될 수 없는 20번째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에 빠진 요정은 오랜 친구인 ‘바람’을 찾아갔습니다.
“바람아, 난 왜 안 되는 걸까? 사랑이 대체 뭐길래 내 공기 막은 깨지지 않는 거지?”
바람은 안쓰러운 듯 머뭇거리다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너의 전생 때문이야. 너는 전생에 남겨둔 숙제가 있어. 저 아래 빨간 벽돌집, 연탄 수레를 끄는 여인을 찾아가 봐. 거기서 네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 해.”
지상으로 내려간 공기요정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아내와 어린 두 남매를 발견했습니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무거운 연탄 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고, 어린 남매는 엄마를 돕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레 뒤를 밀고 있었죠.
그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수레바퀴에 대못이 박혀 바람이 새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황한 공기요정은 해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해님은 강렬한 햇볕으로 바퀴의 고무를 녹여 구멍을 메워주었지만, 그 열기 때문에 아내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구름이 먹구름 카펫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려다 실수로 소나기를 퍼부어 아내와 아이들을 흠뻑 적시고 말았습니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아이들의 얼굴에 묻은 연탄재를 닦아주는 아내. 그녀는 하늘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혼자 이 짐을 다 짊어졌을 우리 남편... 그곳에선 부디 행복하게만 해주세요.”
그 간절한 목소리에 공기요정은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전생의 자신은 무뚝뚝했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가족 곁을 떠났던 것입니다.
공기요정은 결심했습니다. 천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아니 자신의 존재가 소멸하더라도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비꽃 한 송이를 아내에게 보내줘. 내 진심을 전할 수 있게.”
공기요정은 다른 꽃들을 감쪽같이 속여 먼 남쪽 나라 축제로 보내버리고, 오직 보라색 제비꽃 한 송이만을 아내의 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제비꽃을 짝사랑하던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몰래 뒤따라왔습니다. 바람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긴장하며 입김을 불었습니다. “휘리릭!” 꽃씨들은 공기요정의 간절한 마음을 타고 남편의 묘역으로 날아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며칠 뒤, 남편의 기일을 맞아 공원묘지를 찾은 아내와 아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황량한 무덤가에 오직 아빠의 묘 앞에만 보라색 제비꽃과 노란 민들레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보랏빛 제비꽃잎을 살포시 만지는 순간, 바람이 속삭였습니다.
“사랑해... 정말 사랑해.”
공기요정이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고백이었습니다. 아내는 환청처럼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지었습니다.
“당신이죠? 당신 마음 다 알아요...”
그 진심이 맞닿은 찰나, 공기요정을 가두고 있던 투명한 공기 막이 유리 구슬처럼 맑게 부서져 내렸습니다. 20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진실한 사랑’의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공기요정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는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로 서서히 올라갔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공기요정의 등 위로 하얗고 눈부신 천사의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상에는 여전히 은은한 제비꽃 향기가 가족들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