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얘기하면 더 재밌는 부분들,
인생이란 완성작 없는 초안, 꽤 공감 가는 말이었다. 책에서는 이를 '무용한 밑그림'이라 칭한다. 하지만 나는 완성작이 없다는 측면에서 초안을 무용하다고 보진 않는다.
그 자체로 완전한, 쓸모 있는 초안. 이것이 나의 관점이다.
완성작이 있을 필요가 없기에 우린 각자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삶을 살아간다. 완성작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그 자체의 완전한 개인이 된다. 그렇기에 무용하지 않다. 틀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삶을 산 개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것이 진정 이런 것이라면, 난 반회귀파가 되겠다. 회귀 사상의 깨달음 따위 모르는 사람처럼 낭만 있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미도 없고 무게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고통 속에 사는 사람에겐 힘이 되는 말일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왕 사는 거 행복하고 끝짱 나게 재밌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인생의 잔혹함과 찬란함이 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희망을 앗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내가 가진 것을 다 잃고, 얻고자 하는 것조차 없을 때, 그냥 그저 살아갈 때가 온다면, 실의에 빠진 나에게 모든 고통이 무의미하다고 여길 수 있게 해주는 이 사상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토마시는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살 수 없는 남자다. 스스로 진정한 사랑이라 여기는 테레자를 만나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을 느낌에도. 다른 여자를 탐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테레자가 자신의 이러한 생활에 불쾌함을 느끼고 속상해한단 걸 안다. 심지어 토마시 또한 질투심을 느낀다. 테레자가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것을 본 토마시는 그녀가 다른 이와 사랑할 수 있는 여인임을 자각했다. 그리고는 질투심을 느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모순적인 토마시.
그럼에도 그는 다른 여자들과의 순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테레자의 눈치를 보았다. 다른 여자와 시간 동안 시계를 확인하며, 테레자에게 향하기 위해 서두른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다.
테레자의 감정이 단어마다 전해져서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녀의 꿈에서 비롯된 이야기지만, 토마시의 실제 행동에서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 꿈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가 그녀를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여자들을 대함을 느꼈던 테레자. 그가 다른 여자의 향을 묻혀 그녀의 품의 안길 때면 그녀는 매 초마다 그로 인해 괴로웠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괴로웠을 테고. 이런 취급을 받으며 계속 그를 사랑하는 자신이 애석했을 것이다.
테레자의 엄마는 너의 몸이 다른 이들과 같이 평범한 몸이니 샤워할 때 문을 닫지 말라고 그녀를 다그쳤다. 재혼한 아빠가 그녀가 샤워할 때를 맞춰 욕실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화살은 테레자를 향했다.
테레자는 엄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토마시를 만나고부터였다. 그런데 토마시조차 그녀를 다른 여자들과 같이 대했다.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대해주는 이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래서 테레자는 그 지독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엄마와 사랑하는 토마시 때문에.
테레자는 자신도 여자들에게 데려가 달라고 한다. 어떻게든 토마시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여자들을 씻기고 가꿔서, 토마시와의 침대로 보내줄 결심을 한다. 모든 여자와 동등하게 자신을 대하는 토마시를 바꿀 수 없다면, 그녀가 스스로 특별해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는 거다. 그래서 그녀는 양성적 존재가 되어, 토마시와 여자들을 함께 탐닉하고자 한다. 물론 토마시는 이를 수락하진 않는다.
테레자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 한다. 남들과 다른, 차별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이 그녀에겐 가장 커서, 다른 감정들을 모두 이긴다. 사랑하는 남자가 바람피우는 행위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자처하면서까지 그녀는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 함께 여자들을 거느린다면 그 여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선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감정이란 무섭다. 원하는 감정을 얻기 위해 비상식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을 지배하는 감정과 욕망은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는 타인을,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해야 할 부분은 감정과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눈에 총기가 돌게 해준다.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잘만 다루면 그만한 좋은 도구가 없다. 현명한 사람은 이 도구를 잘 다루는 법을 익힌다. 그래서 주인에 따라 위험하기도, 탁월하기도 한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생기 있는 삶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