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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의 사진관 Nov 19. 2022

성적표의 김민영 _ 가끔은 미워하고, 늘 좋아했던

어른이 된 지금 그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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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성적표의 김민영'은 세 친구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이제 갓 대학교를 들어간 청년들과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어느새 멀어져 버린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이 많이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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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러 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이번 작품은 친구란 무엇인지? 사소한 계기로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그리고 상대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상처를 받기보다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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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생활을 하며 삼행시 클럽을 만들며, 고등학교 생활을 함께 지낸 '김민영', '유정희', '최수산나'.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우정도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다른 생활 속에서 관계가 소원해진다.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민영'이 갑자기 '정희'를 초대하고, '정희'는 기쁘게 찾아가지만, 자신의 기말 성적을 정정하느라 바쁜 '민영'에게 정희는 안중에도 없다. '정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을 기다린다. 과연 그들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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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생만이 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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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가 창을 통해 치킨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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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어도 밤이면 배가 고플 나이였던 우리는 야자시간이 끝나갈 즘이면 분주해진다. 누군가는 취침 전에 씻기 위해 또 누군가는 컵라면에 물을 받기 위해 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린 더 대담해져 갔다. 실습실에서 버너와 냄비를 가져와 라면을 끓여먹거나 '정희'처럼 창을 통해 치킨을 시켜 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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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생활하면서 제일 맛있었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후지가 제일 맛있었다. 지방도 없고 살만 있는 뒷다리살이 뭐가 맛있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맛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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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즐거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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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면 수영을 하는 기분이 든다는 말에 '정희'와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된 '민영'은 사고로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된다. 그날 이후 '정희'는 '민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민영'은 '왜 사과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서로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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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일이 있었다. 친했던 친구와 6개월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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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그때를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때의 우리는 어리고 미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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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민영'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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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분위기가 여전히 어색하다. 정희는 여전히 내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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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로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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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 알게 된다. 나와 같은 일을 하거나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연락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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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함께 놀자며 '정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지만 낮은 학점을 수정하기 위해 고민만 하며 함께 놀지 못한다. '정희'의 눈에는 놀러 오라고 해놓고는 자신이 왜 '민영'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민영'은 자신만 바라보는 '정희'가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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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경험을 하다 서로 다른 길로 가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힘들며, 연락이 점점 끊기는 이유는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줄어들어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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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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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를 정정하기 위해 '민영'은 '정희'에게 쪽지만 남겨두고 집을 나선다. '정희'는 책장에서 '민영'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읽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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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교우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적혀 있으며 뒤로 갈수록 고등학생 시절 즐거웠던 일과 그녀의 엉뚱한 상상들이 적혀 있었다. '정희'는 그제야 밝아 보이는 '민영'의 걱정과 불안에 대해 알게 되며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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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상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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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는 '민영'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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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친구들이 아침에 갔다 저녁에 돌아오는 짧은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된다.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데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내려주지 않는데..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고 그들에게 제주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3시간. 그럼에도 그들은 처음 제주도에 왔다는 것에 기뻐하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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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은 '민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야?'라 할 수도 있지만 '정희'는 그만큼 함께 웃고 떠들던 시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한때는 그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순수하게 웃고 함께한 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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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닌 '성적표의 김민영'인 이유는 작품의 후반부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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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는 '민영'의 집을 떠나며 글을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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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 F 네가 한국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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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든 즐겁고 엉뚱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좋았던 그 시절을 지나 미묘하게 어긋나는 20살의 우정 과연 나는 너에게 몇 점짜리 친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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