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허리가 굽은 이파리를 몇 개 발견하고는 가을의 끝을 예감했다. 두 뺨이 얼어붙을 것 같아도 붙잡고 있던 가을이 이렇게 가는구나. 가을의 끝에서 가을을 보듯이, 누군가는 자신을 보는지도 모른다. Y는 단풍의 아름다움에 멍해지다가 말라버린 이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했다. 젊어서만 나이 듦이 성숙으로 보이는 것인가. 나이 듦은 젊음에 반사되어 존재하는가. 사랑이 끝나고서야 그 사랑을 제대로 알 수 있듯이, 젊음도 다 살아내고서야 그 젊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니. 한비야는 자신이 커서 뭐가 될지 아직도 궁금하다고 했다. 루이제 린저는 "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끝을 갖고 있지 않다.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다만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모든 것은 그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생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즉흥 한다"라고 했다. 지나친 것은 그게 무엇이든 지나치다는 이유만으로 위선을 품고 있다. 정체한 것은 흘러가게 두고, 과도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가을의 변덕이 좋아져 버렸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그 가장자리의 진실됨이 맘에 든다. 오늘 D는 어제 쓰러졌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성 쇼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오늘 H는 친구의 쿠션을 뺏어와서는 '제 마음이에요'라며 푹신함을 자랑했다. 모든 게 직선은 아니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알게 되는 걸까. 사람은 칼에만 베이는 건 아니다. 아주 보드라운 것들에도 베인다. 피가 나기도 하고 눈에서 촛농이 떨어지기도 한다. 마음엔 먹이를 줄 게 아니라 시간을 줘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