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까, 나눈다는 건 가졌다는 뜻.
2025 새해의 키워드로 세 단어를 뽑았다. 필사, 나눔, 아티스틱.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쓰기보다 더 갈증이 생긴 건 읽기였다. 이미 충분히 읽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어쩌면 진짜 원하는 건 쓰기에 본보기가 되는 읽기, 좀 더 잘 쓰기 위한 읽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건, 필사. 필사적으로 뭔가 옮겨 적어보는 일. 그게 명문장이든, 독일어의 동사 변화든, 타로 카드의 해석이든, 크로매틱 하모니카 연습곡의 가사든, 뭐든 좋은 것을 베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뭘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했다. 그건 내가 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와 다를 바 없는 질문이라고. 세 번째 단어의 아티스틱은 내가 옮겨 적고 베껴 적는 메시지를 나누는 방식, 배우고 읽고 느끼고 소화해 낸 것을 나누는 방식에 가까웠다.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에서 시작해 생활의 리듬에 이르기까지 쓸모없음의 쓸모를 누려보고 싶기도 하다. 나눔을 생각한 해에 누림도 같이 생각하는 이 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둘의 공존을 욕심 내보고 싶다. 마흔이 온지도 모르고 마흔을 보냈다.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 당황이 조금 기쁘기도 하다.
새해엔 내향인들을 위한 필사 모임을 만들고 싶다. 내향인의 특성상(아니, 나의 특성상) 생각이 실천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게 뭐든 옮겨 적으려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이 계획은 작년에도 했던 것 같다.) 연습하듯이 살고 싶다. 글쓰기도, 하모니카 연주도. 아마추어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프로 같은 아마추어가 되고 싶다. 나는 아주 행복해지는 느낌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흔을 모르고 마흔을 지내보니 행복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필사 모임을 만든다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좀 궁금하긴 하다.
우린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까, 나눈다는 건 가졌다는 뜻. 나눈 후에야 뭘 가졌었는지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가진 것을 반으로 나누는 나누기만 배웠지 나눌수록 채워지는 마법에 대해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나도 가르치면서 배워야겠다. 가르치다 보면 나도 배우게 되겠지. 나누면서 채워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