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빚은 듯한 나무 앞에서 나는 나무와 빛의 관계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빛의 관점에서 본 나무의 빛깔은 하늘까지 물들여버렸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상이나 풍광을 어떻게 바라볼지 결정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우아한 서정성. 가까이 다가갔다가 또 멀찍이 물러서서 그렇게 한참 서 있던 작품들은 유독 한 작가, 강요배*의 것이었다.
강요배, <나무 - 빛>, 전북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풍광의 형태나 경계를 최소화하면서도 멀리서 바라보면 바람이 통하고 빛이 흐르는 나무들이 서 있었다. 관람자의 위치에서 보면 나무들 아래에 서서 빛을 머금은 나무를 바라보는 식이다. (누군가는 황사라고도 했지만.) 멀리 떨어져서 봐야만 형체와 경계가 보이는 그림을 작가는 어떻게 그렸을까? 거침없이 무심하게 긁어낸 아크릴 물감의 흔적을 감상한다. 화폭 밖으로 쏟아질 듯 비스듬히 배치된 나무의 구도,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을 보는 강요배의 관점도.
그 작품 앞에서 형체는 없지만 땅에 떨어지는 것도 없다는 믿음으로 공중에 나부끼는 재능이라는 환상 먼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무와 빛의 관계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였으리라. 한동안 재능의 덫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실력, 사교성, 성실함. 재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골고루 잘 섞여 단순 시도나 프로젝트로 그치지 않고 직업이나 직업에 준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 점에서 환상 먼지는 황사와 황금 그 사이를 지독하게도 맴돌았다. 어떤 날엔 환상적이었고, 어떤 날엔 환상에 불과해 보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퍼포먼스 작품인 '해방 시리즈(1976)'에서 목소리가 다할 때까지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 해방>, 머리가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생각나는 단어들을 모두 소리 내어 말하는 <기억 해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체 에너지를 모두 태우기 위해 6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격렬하게 춤을 추는 <신체 해방>을 시도했다.**
강요배는 제주에 살면서 나무와 빛의 어우러짐을 표현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그게 나무의 해방처럼 느껴졌다. 빛의 관점에서 나무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었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형태와 형태 없음이 마구 뒤섞였다. 얼마 전 엄마와 지난 시간을 설명할 때 감금이란 단어를 세 번쯤 쓰고 나서 멈칫했다. '여길 떠나고 싶어'라고 비명을 지르지도, 머릿속 단어를 모두 다 게워내지도, 해가 지도록 격렬하게 춤을 춰보지도 못한 시간들에서 해방이란 단어는 끊임없이 소모되지만 정작 낯선 단어였다.
지난 시간을 통해 어떤 재능을 길어 올렸을까. 내가 쉽게 소화한 지식이 남들에겐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다정과 감정을 구분하고 분리하고, 일을 우선순위에 맞게 배분하고, 데드라인에 맞게 일을 해결하고, 번역 실력은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한국어 작문의 솜씨라는 것을 깨닫고, 해외 바이어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학습자를 관찰하고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때에 따라서 열린 질문보다는 객관식이 질문의 물꼬를 제대로 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따끔하게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꾹 참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알고,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임을 알고, 스토리텔링은 수업 뿐 아니라 삶 전반에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독자를 발견하고 발굴할 수 있고...
나는 뿌연 환상 먼지들을 모아 이제까지 '내가 재능이라 불러오던 것들'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두괄식이 아니라 미괄식으로, 평가받는 객체가 아닌 해석의 주체로, 틀 없는 틀을 다시 만들어볼까 한다. 나무와 빛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빛의 해방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기록해 둔다.
*민중 미술 운동의 1세대 작가인 강요배는 1980년대 초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걸개그림 등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중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1992년 3월 '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은 한국 사회에 4·3의 실체를 바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리얼리즘 회화와 역사 주제화에서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그의 화폭에는 제주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긴다. 시대와 역사에 충실하고 다기한 화풍의 변모를 감행했으면서도 따스하고 촉감적인 작가의 인물, 풍경화들은 지금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