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만큼만 기억한다
메모 #1(브런치 작가의 서랍)
말은 해봐야 는다. 내가 생각하는 말하기의 네 가지 요소. 리스닝, 딕션, 스피드, 위트.
글은 써봐야 는다.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글을 읽기. 요조, 김혼비, 이슬아, 이금희, 양다솔.
메모 #2 (교사 수첩)
W: 계주, 발야구, 피구에서 반 대표로 존재감 넘치는 활약. 쉬는 시간에 Y가 공동교육과정 면접 보고 온 썰을 풀었다. 네 번 상담하면서 네 번 성장한 기록. 기록하는 만큼만 기억한다.
메모 #3 (모닝페이지)
강한 멘털은 빨리 잊는 자의 것!
메모 #4 (카톡 프로필)
잊자, 있자, 익자!!!
기록하는 만큼만 기억한다. 교실 밖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 모니터 앞에서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쓰지 못한 날이 길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내가 해온 건 글쓰기였다. 학생 하나하나를 관찰한 내용에 대해 쓰기.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써야 해서 쓰는 글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이곳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나는 교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걸어 나가야 하니까.
뭉클하게 말하고, 유쾌하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읽은 책들이 여전히 글쓰기*에 관한 것이라 난 여전히 잘 쓰고 싶은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게 됐다. (하다 하다 글쓰기까지 장비빨. 일단 써야 는다는 걸 알면서도 글쓰기 책부터 사고 보는 마음. 그래도 밑줄 벅벅 그으며 열심히 읽긴 읽었다.) 책장에서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면서 말을 잘하고 싶은 욕구가 더 세다는 걸 알게 됐다. (글을 잘 쓰게 된다고 해서 말을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자칫, 문어체로 유창하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사라는 직업이 페이스 메이커나 편집자, 인터뷰어와 비슷하다고 느낀 터라 그 연장선상에서 '잘 듣고 충분히 전달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사람'이라는 그림이 완성되었던 게 크다.
기억에 따르면, 고등학생 아니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에 일찍이 메모광의 삶을 시작했지만 김중혁 작가와 달리 책을 낼 수 없는 이유는 메모가 너무 나여서 만들어내는 족족 그것을 파괴하는 묘한 재주도 갖췄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나이를 먹는 일의 효용은 이전보다 차분해져서 내가 되는 일을 삶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록은 더욱 소중해진다. 이제는 쓰는 순간 흝어지지는 않을 기록. 기록만이 기억이 된다고 믿는 시점의 기록. 웃긴 생각이 나면 적어둬도 좋겠다. 수시로 흔들리고 기복도 심한 일상에 기록이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이다. 예상보다 괜찮지 않다면 그것도 기록해보겠다.
*이슬아,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 김중혁, <미묘한 메모의 묘미>
**이금희, <우리, 편하게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