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30을 찾아서(9): 여러 번 죽었다가 다시 사는

파과와 파쇄

by 뭉클

*'730을 찾아서'는 하루에 한 권씩 총 365일 동안 읽어도 좋을 문학책, 비문학책 각각 365권을 찾아 서재를 완성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책 일기.



20년 후의 상실과 마모를 떠올린다. 구태여 그런 것은 아니고, 오래 몸담은 직장에서 떠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자꾸 생긴다. '서울 자가에 살며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장' 때문만은 아니고, 얼마 전 퇴직한 동료교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교무실에 들어섰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게 보이는 나이가 됐을 테지. 그래서 파과와 파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단어를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주인공 '조각'에게서 재킷 한 구석에 칼을 숨기고 사는 여느 중년들의 모습이 비치는 것도 그래서인가. 사라지는 삶에 대해 오래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지금 당장 필요해서 연장을 꺼내드는 삶을 살아온 킬러 조각에게서, 자주 그 칼 끝을 숨겨둬야 하고 틈틈이 뾰족하게 다듬어야 하며 그 칼이 무뎌져 어떤 식으로 분류되더라도 '오늘을 불꽃처럼 살기'를 읽어낸다.


구병모의 만연체가 아주 맛깔나서 계속 그런 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어진다. 킬러 '조각'의 삶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면, 여러 번 죽여보고, 죽어보고, 그래서 다시 여러 번 살아보는 작가의 삶도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 사회적으로 승인된 킬러의 삶 같기도 하다. 뾰족함을 잃지 마.


_


생각을 많이 하면 그 끝엔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다. 타고난 킬러가 아니라면 킬러로 길러질 여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고 그중 여자인 것이니 사람이라면 응당 거쳐야 할 단련의 길을 '그녀'도 겪는 것이겠지. 너무 생각이 많으면 반응이 느려지고 공격의 타이밍도 놓치게 되는 법. <파쇄>의 '작가의 말'에서 구병모가 언급한 '진정한' 여성 서사란 말은 좀 어딘가 어색하고 인위적이다. 마치 가짜도 있는 것처럼, 서사에 늘 어떤 형용사가 필요한 것처럼. 그 형용사에 일정한 기대가 있는 것처럼. 그렇지만 일단 마음먹고 칼을 집었으면 뜸 들이지 말아야지.




구병모-위즈덤하우스-2018년 4월 16일 / 2023년 3월 8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30을 찾아서(8): '만약에'는 과연 지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