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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곰 엄마 Feb 14. 2024

남편 집을 나가다.

-홀로서기 시작.. 새로운 출발..-

1월 1일부로 나가서 따로 살기로 했으나 생각처럼 일은 진행되지 않았다. 월세에 비해 원룸은 너무 작아 숨이 막히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작은 아파트 월세를 알아보자 하고 집 근처 오래된 낡은 투룸 아파트를 구했다.

이사 날짜가 열흘이상 걸려서 그동안 아무것도 없을 집의 살림살이를 남편은 열심히 구매했다.

생각보다 큰 지출에 남편의 무척 당황스러워했고, 끝도 없이 뭔가를 사야 하는 생각에 멘붕이 온 것 같았다....

난 우선 1월 1일부터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그러지니까 나 또한 멘붕이었다...

그래. 바로 나갈 수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여태껏 버티고 살았는데 며칠 더 못 기다리겠어. 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가길 바랬다..


평소 살림을 하지 않던 남편이라 가구며 가전이며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아.. 내가 시간 나는 대로 알아보고 카톡으로 전달하면서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 갔다..

더구나 큰 지출에 놀라워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나 해서 이별 선물로 침대를 해 주겠다고 하니 무척 고마워했다.

아무튼 남편은 비워진 집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갔다. 중간중간에 언제쯤 마무리될 것 같냐는 나의 물음에 너무 눈치 주지 말라고 대답을 했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줬나 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집을 꾸미고 물건을 사고 마지막으로 옷을 옮기는 걸로 마무리가 됐다.

간간히 난 옮기는 것도 도와주고 다이소 가서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이러다 보니 우리가 헤어지는 게 맞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렇게 무사히(?) 이사를 마친 남편은 홀로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부터 방학인 아들이 아빠집이 아늑하고 좋다고 며칠째 집에서 잠을 안 자고 있다.....

남편과 아들이 없으니 집에 배달되어 있던 반찬이며 국이 그대로... 있었다...

퇴근해서 들어가면 딸은 조용히 핸드폰에 열중해 계셨고, 간간이 성인이 된 기념으로 친구들과 저녁에 하이볼 한잔하고 오셨다...

둘만 있다 보니 딱히 할 일도 없고 편하게 저녁 약속 잡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자유가 온 것 인가? 아직 실감이 나진 않지만, 조용한 집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딸은 집이 조용하고 할 일도 많지 않아서 좋단다. 항상 네 식구 시끌벅적하게 있다가 조용하니 맘에 들었나 보다..

아들 얼굴도 볼 겸 먹지 않은 반찬도 가져다 줄 겸 5분 거리 남편집에 딸이랑 갔다.

반갑게 맞이하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이 좀 낯설기도 이사하느라 몇 번이고 왔던 집이라 친숙하기도 했다.

수납장을 열어보이면서 설명하는 아들은 좀 들떠있어 보였고, 남편은 천천히 구경하라고 웃으면서 지켜봤다. 

우리 집보다 가짓수 많은 반찬이 있는 냉장고와 평소 성격처럼 정리가 잘 된 싱크대 수납장, 그리고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들.. 베란다에 진열되어 있는 세제와 휴지.. 이건 뭐 없는 게 없다.

말 그대로 여자만 들어오면 될 것 같은 신혼살림이다.

아늑하게 정리정돈 되어있는 깔끔한 집을 보고 안심했다.

사실 남편이 좁디좁은 원룸에서 홀로 들어가 살았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았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잘 꾸며놓고 다 채워진 집을 보니 그 간 걱정이 눈 녹는 사라졌다.

자기 집이니까 더 쓸고 닦고 할 테니..      

딸하고 가면서 ‘어째 헤어진 건 맞는데, 왜 집이 두 개가 된 것 같지??’ ‘두 집 살림 하는 느낌은 뭐지??’ 딸이 너무 가까워요~~ 하며 웃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고 이제 시작이니 차차 적응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서로 죽일 것처럼 미워질까 봐 헤어지는 건데 이건 편한 것도 문제인 듯 한건 내 착각인가?

나보고 나중에 다시 합칠 수 있으면 하라는데, 난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왔고  내 성격상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남편이기에 우리는 남들이 말하는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각자 너무 잘 살 사람들이다..

다만 아이들한테 더 이상 상처 주지 않는 부모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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