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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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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enelee Aug 14. 2024

검도... 좋아하세요? (1)

5급 비기너의 검도 일기

.


-자 다시 삼동작. 하나. 

-(검을 들어올림)

-아니야. 다시. 하나가 빠졌어.

-...발구름 말씀이십니까?

-아니. 다시 생각해봐. 하나 빠졌어.

-아 기합입니다.

-그래 기. '기검체 일치' 못 들어봤어? 검과 몸이 하나가 된다. 근데 그 전에 선행하는 게 있어. '기'가 제일 먼저야. 눈 앞의 상대를 치려는 마음이 있어야 돼. 그 마음이 의지가 되고 의지가 기세가 되고 기세는 기합으로 나와야 하는거야. 기세에서 지면 더 볼 것도 없어. 이미 알지? 검도 배웠다고 했으니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항상 타격할때는 배랑 등에 힘주고 소리를 내질러야 돼. 뱃심이라는 말 들어봤어? 기합은 배랑 등에서 나와. 뱃심이 모이면 배짱이 되는 거야. 배짱 없으면 검도 못해.



-검도할 때 없애야 할 게 네 가지 있어. 뭔지 알겠어? 말해봐.

-...두려움?

-그래 그것도 맞아. 일단 첫째,  놀라 주춤하거나 서두르지 말아야 해. 아까 자네가 성격이 급하다고 했는데, 검도는 절대 허둥대거나 급하면 안 돼. 중단 해봐. 자 이렇게 중단 자세에서부터 딱 중심 잡고 검을 겨누고 상대를 똑바로 보면서 침착하게 가늠하고 파악하는거야. 그리고 기회가 오면 그때 확실하게 치는거야. 놀라 어영부영 얻어걸리기를 바라면서 어설프게 치면 이길 리가 없어.

-예 맞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까 자네가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면 안돼. 상대가 누구든 실력이 어떻든.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야. 두려우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내 기량을 제대로 못 쓴다고. 상대에게 맞는 건 문제가 아닌데 내 걸 발휘 못하는 건 문제가 돼.

-(격한 고개 끄덕임)

-셋째.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주춤거리게 되는 상태. 검도 오래 한 사람들 눈에는 칼을 맞대고 있는 사람 속에 그 의심이 있으면 바로 보여. 그 말은 곧 기세에서 이미 패했다는 거야.

-예...

-넷째. '혹'이라고 하는데, '의혹'할 때 혹이야. 생각이 너무 많아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관장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 말해봐.

-그 네 가지를 없애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 데는 선천적인 게 크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누구나 수련으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음... 시작할 때는 당연히 본인 성격에서 시작하지. 너무 소심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은 하기 힘든 운동이야. 근데 자네는 이미 자신감이나 기세는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ㅎㅎㅎ예... 감사합니다.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검을 들 때 되게 조급하고, 기합을 내지르면 바로 평정을 잃게 됩니다. 그 조급함의 원인이 스스로를 믿지 못해 계속해서 마음이 다급해지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근데 그건 검도를 계속하면 나아질 거야. 그럼 자네는 앞으로 검을 들어올리려 하는 순간마다 생각해. 지금이 맞는지. 거리가 충분하고, 상대가 빈틈이 있는지. 그러면 돼. 알겠지?








1. 빈틈 = 죽음


  상대를 제압하거나(유도, 레슬링, 주짓수와 같은 그라운드 그래플링 류) 전투불능으로 만드는(복싱, 무에타이, 태권도, 가라테와 같은 입식 타격기) 모든 격투기에서 빈틈을 보이는 한순간에 승부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검도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칼을 맞댄 상황에서 빈틈을 보이면 제압당하거나 전투불능이 될 틈조차 없다. 빈틈을 보이면 정수리에서 턱까지 머리가 갈라지고 검을 든 손목을 잘리고 허리가 갈리고 목 정중앙을 검이 뚫는다. 죽음에 대한 유예가 없는거다.


  1초 간격으로 인해 내가 <패한다>가 아니라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얼마나 마음가짐이 비장해지겠냐고..


검도는 이제 당연히 전장이 아닌 도장이나 대련장 위에서, 진검이 아닌 죽도로 이루어지는 운동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원리는 같다:



2. 그래서 검도의 기본이 되는 가르침 중


  기검체일치(의지 혹은 기세와 / 검과 / 몸이 하나가 된다)는 온 마음과 몸으로 상대를 베기=죽이기 위함이지만

  경구의혹(놀라 평정을 잃음/두려워함/의심함/방황함)에의 경계는 베이지 않기=죽지 않기 위함이다.


  내가 베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베여서 몸이 두 동강이 나면 돌이킬 수 없다

  다시 힘을 끌어모아서 반격을 꾀하거나 충격을 갈무리할 시간을 벌 수 없거든.. 이미 죽었거나 손목이 잘렸으니까.


  그래서 대련을 할 때는


 가. 상대를 반드시 벤다

 나. 빈틈을 보이면 죽는다


가 동시에 머리와 몸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곧


가. (상대를 반드시 벤다) 배짱과 살의를 끌어모아서 단숨에 공격한다

나. (빈틈을 보이면 죽는다) 눈 깜빡 않는 집중력으로 얼음장같은 고요함을 유지한다


가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살벌하게 어렵다.


  배짱과 살의만으로 달려들면 > 사망

  얼음장같이 고요하기만 하다 공격하지 못하면 > 사망


...


  그러니까 사망하지 않으려면


  자세를 바로세워 고요하게 집중하며 기다리다가 -> 상대의 검에 베이기 전에 내가 0.1초라도 먼저, 폭발하듯 배짱과 살의를 끌어모아 쳐야 한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도 어렵다. ‘말이 쉽지’라는 생각도 안들고 그냥 숙연해진다.


  검도가 미친듯한 운동신경과 재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는 운동인 것,  또 수련한 햇수에 따라 단 취득 자격을 차등 부여하는 체제는 이런 이유에서다. 


가. (상대를 반드시 벤다) 배짱과 살의를 끌어모아서 단숨에 공격한다

나. (빈틈을 보이면 죽는다) 눈 깜빡 않는 집중력으로 얼음장같은 고요함을 유지한다


  이걸 동시에 갖춘다는 건 그냥 운동신경과 피끓는 혈기만으로 될 수가 없다. 대련 몇 번만 해봐도 느낄 수 있다.




3. 검도의 예의


  많은 도장에서 번거롭다는 이유로 때로 생략하거나 축약해서 진행하지만, 원칙적으로 검도는 다른 운동에 비해 이것저것 지켜야 할 게 많다. 


  예를 들어:


  1) 호구를 쓰고 벗을 땐 단이 높은 순부터 낮은 순으로 일렬로 늘어서서 무릎을 꿇는다. 특히 벗을 때, 가장 단이 높거나 오래 한 사람이 ‘호면 벗어’ 하고 기합 지르듯 명령하고 본인의 호면을 벗기 시작하면 꿇어앉은 채로 기다렸다가 내 옆의 사람이 벗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벗을 수 있다. 이때 ‘호면 벗어’가 있고 나면 모두가 일제히 침묵 속에 고요히 호완과 호면을 벗어야 한다.


  2) 마지막 사람까지 호완과 호면을 벗고 나면 갑과 갑상을 벗기 전에 꿇어앉은 상태 그대로 눈을 감고 묵상한다. 묵상을 마친 후에 다 함께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 관장님께 경례, 상호간의 경례를 한다(원칙적으로는 절..을 해야한다.) 그 모든 절차가 끝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 꿇어앉고 갑과 갑상을 마저 벗는다. 역시 일동 침묵 속에서.


  3)호구와 죽도는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호구는 각을 잡아 정성껏 정돈해야 한다. 죽도는 검 끝이 바닥에 닿는 일이 없도록 한다. 검을 바닥에 짚고 서거나 휘두르며 장난을 치거나 끝을 발로 차는(!) 일은 절대 삼간다. 


  4) 대련을 시작할 때는 상대와 아홉 걸음 떨어진 상태로 마주본다. 칼을 든 손을 허리에 들어올리기 전에=칼을 차기 전에 반드시 상호 목례한다. 칼을 찼다면 이미 살의가 우선하므로 칼을 차기 전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세 걸음째에 칼을 뽑아 선혁이 닿는 거리에서 마주대고 겨눈다. 

  대련이나 시합이 끝난 후에는 반대로 진행한다. 칼을 찬 채로 뒤로 다섯 걸음. 칼을 내리고 다시 상호 목례한다. 


  등등. 


  사실 꽤나 엄숙한 규칙들이고 일부 형식적인 것들도 있다. 나는 형식적인 규칙 앞에서 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일단 처음 봤을땐 그 모든 것들이 멋있어보여서(^^) 괜찮았다. 근데 지금에 와서는 검도의 예의 대부분에 관해 몸으로 납득한 상태다.


  다시 1, 2번으로 얘기가 돌아가는데, 제일 본질은..

  그 모든 번거로운 예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수련에 가깝다는 거다. 죽지 않기 위한 수련.. 말했다시피 1초 전까지 소리 빡빡 지르면서 온 몸을 써서 상대를 타격했어도 다시 1초만에 재빠르게 뒤돌아 자세를 바로세우고 호흡을 가다듬고 호면 너머 상대의 눈을 보면서 고요하게 집중해서 다음 타격할 수를 읽어야 한다. 


  그러려면,


  숨넘어가게 힘들어서 헉헉대고 아드레날린에 온 몸의 감각이 날뛰다가도 한순간에 무릎 꿇고 침묵 속에 조용히 꿇어앉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다 보호구를 벗고 정성껏 정리하는 차분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묵상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내가 먼저 베고 쳐서 죽이겠다는 살벌한 마음가짐을 갖고 들어가면서도 상대와 마주한 채로 목례하고 다가서는 순간부터 차분히 집중해서 탐색해야 한다.


  나를 살릴 수 있는 방어의 수단인 호구와 공격의 수단인 죽도를 대할 때의 습관적인 방만함이 시합에서 일 초라도 드러나는 순간 죽는다. 죽도를 들고 호구를 쓴 상태에선 자동으로 마음가짐이 바로잡히도록 훈련하는거다.


  이렇게, 처음엔 그냥 멋져!(^^)라고만 생각했던 규칙과 예의들이 사실은 내 머리로 칼이 들어오는 결정적인 1초가 왔을 때 죽지 않기 위한 연습인 걸 점차 깨닫게 된다. 


  그걸 느끼고 나면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때부터 검도가 정말로 재밌어지는 거다. 







2024.07.24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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