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나는 차를 정말 좋아한다. 차에 대한 지식이 깊지는 않지만, 그냥 진하게 우려진 쌉싸름하고 구수한 홍차부터 그 외 다양한 종유의 블렌디드 차까지.. 차를 마시는 시간이 너무 좋다.
그리고 내가 애정 하는 또 다른 시간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특히 수채화를 좋아한다. (수채화라고 하면 여성스럽고 하늘하늘한 꽃잎과 자연의 아름다운 그림을 생각하겠지만 난 물이 그냥 막 튀어있고 물감의 색들이 서로 뒤엉켜 섞여있는 그런 물장난 같은 수채화를 좋아한다) 내 마음대로 드로잉을 하는 시간은 그냥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나만의 놀이의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소중한 나의 그리기 시간이 멈췄다.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만 생각했다. 매일 그렸었는데.. 내가 왜 새삼스럽게 이러지..? 싶으면서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힘없는 하루하루와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 그리고 갈 곳을 잃은 나의 열정. 이 모든 게 뒤엉켜서 엉망진창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티타임을 갖기로.
아침 일찍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청소기로 집안을 한 바퀴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제주 한란의 품격 있는 향을 담은 티라는 글귀에 혹해서) 선물 받은 제주난 꽃 향 티를 우렸다. 아.. 향기롭다. 오래간만에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과 향긋한 차 한 잔에 이렇게나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나아질 수 있는 기분인데 왜 이런 시간을 갖지 않고 살았던 거지..?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바쁘기도 바빴지만 사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뭐를 그려야 할지 몰라서 멈춰 있던 시간이 꽤나 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이 한마디가 떠오른다. ‘뭐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러고 있는 것보단 백배 낫지!!’
세상에 차라는 선물 같은 존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차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차에 대해 무지한 편이지만, 그럼 또 어떠한가..? 사랑은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닌걸.. 향긋한 차가 건네주는 말 한마디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갑자기 창작의 욕구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향한 멈춰있던 나의 애정공세를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남들이 뭔 상관이더냐 내가 무언가에 애정을 쏟고 꾸준히 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