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시작되는 그림책 작가 지망생 엄마의 그림 작업
오늘 기상 시간 23시 30분. 오! 웬일인가! 오늘은 12시 전에 일어났다. 아이를 재우다 보면 자칫 다음날 눈을 뜨게 되는 아뿔싸 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하지만 오늘! 방금! 내가! 12시 전에 눈을 뜨다니..
늘 짧지만 왠지 밤이 길게 느껴지는 오늘이 될 것 같아 일단 기분이 좋다.
나의 기상시간은 이렇게 하루 두 번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침엔 주로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져 있고, 아이를 재우며 잠시 눈을 붙였다가 내가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나의 두 번째 기상시간은 컴컴한 한밤중이다. 이렇게 밤에 눈을 떠서 보통 (건강을 생각해) 4시 전에는 다시 잠에 든다.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싶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겨먹은걸..
현관 옆에 딸린 작은방에 나만의 작업실을 대강 꾸려 놓은지라 밤 출근(?) 전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나름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하게 앉아 정리를 하며 화구를 꺼내본다. 해외에서 다 수년 살아온 나의 경험이 내 안 어디엔가는 묻어나 있겠지 하며, 나의 특별함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한숨과 함께 주저앉기가 거의 반복적인 나의 패턴 같다. ‘나에게 특별함이란게 과연 있나?’ ‘나만의 것은 대체 뭘까?’ 나는 뭐를 잘하나? 등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시원하게 찾지 못하는 답에 자존감 떨어지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더 기어올라 오기 전에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
이 밤을 이렇게 허투루 채울 수는 없다.
그래. 일단 생각 말고 그리자. 이 귀한 시간 머리가 안 돌아가면 몸이라도 먼저 움직여 보자는 심정으로 무엇이라도 끄적거려 본다.
오늘은 수영하는 나를 그린다. 나는 수영과 다이빙을 좋아한다. 이유는 물에 들어가면 중력이 사라지면서 그 어떤 저항도 없는 것처럼 자유로움과 묘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만나는 바닷속 세상은 어떠한가? 나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주는 환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그래서 나는 물을 또 다른 우주라 생각하고 사랑한다.
지금 나는 내가 상상하는 바닷속 우주와는 다른 곳에 있지만, 이곳에서도 꽤나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누구에게도 들어보지도 내가 직접 누군가에게 말해보지도 못했지만, 어쩌면 나는 상상하고 그 상상을 그릴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며 오늘도 스스로에게 특별함을 부여해 본다.
그리는 이 순간이 좋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떤 우주에 있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쓰고 그리며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