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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LS Sep 16. 2022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있다. 맑고 투명한 눈. 온도를 알 수 없게 뜨거움과 시원함을 오가는 눈. 자그마한 육체에서 그 어떤 신체부위 보다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의 눈.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조차 투명해지는 듯했다. 마음에 잠긴 솔직한 말을 다 끌어냈고, 앓던 마음도, 가벼운 마음도 나누고 싶어졌으며, 초라할 때도 자신있게 그의 눈이라면 응시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인간이 본디 지닌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 눈이었다.




  카페에 앉아 공간을 채우는 인간과 사물을 바라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이곳. 공들였지만 표준화된 내부. 벽에 붙은 다양한 목재 오브제와 대리석과 나무를 혼합한 테이블, 나의 노트북을 비추는 까맣고 납작한 갓이 달린 램프. 아름답지만 먼지가 쌓인, 인간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공업적 아름다움. 인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다 이내 나와 커다란 테이블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친구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며 파안대소를 하는 두 사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인터넷 검색을 골몰히 하는 사람, 심각한 얼굴로 노트북을 보며 마우스 스크롤을 오르내리는 사람, 음료 한 번 마시고 마우스 한 번 만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 한 손엔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하며 한 손으로는 노트북으로 바쁘게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 한참 어려 보이는데 손목 보호대를 하고선 일반 마우스가 아닌 버티컬 마우스를 써서 괜히 마음이 쓰이게 하는 사람. 이들을 관찰하며 물체와 인간, 두 아름다움에 대해 번갈아 생각해 본다.

  이전의 나는 아름다운 것을 돈과 교환했다. 돈이 풍족하지도 않았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가능한 예산 범위 안에서 아름다운 옷과 물건들을 집으로 끌어들였다. 유명 디자이너 하우스에서 만드는 옷과 유사한 스타일로 빠르게 재생산하는 SPA 브랜드에서 계절마다 옷을 사들였고,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문구류, 왠지 필요해 보이는 집기류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사곤 했었다. 이들이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생각했고, 내가 소유한 물건들이 나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다.

  돌이켜 보아도 나의 예전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물건은 구매자의 관심, 기호, 필요, 여력 등 그 사람의 삶을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개인의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수단이라고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름다운 물건을 많이 소유했는지 보다 물건을 구입할 필요가 생겼을 때, 그 제품이 개인의 필요와 미적 취향을 잘 반영하는지에 더 관심이 간다. 필요 이후의 소유. 개인의 자제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마음에 새겨야 할 삶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그의 아름다운 눈을 본 이후 서서히 이루어졌다. 10년 전, 처음 직업을 가졌을 때 직장 선배로 만난 사람이었다. 제대로 아는 것은 부족해도 패기만은 넘쳤던 그때, 그는 나의 어설픈 패기를 늘 과하게 칭찬해주었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선배들은 일을 새로 시작하는 나를 깎고, 재단하려 들었는데 나를 있는 그 자체로 봐주고, 내가 가진 것은 어설프거나 작은 부분이라도 높이 추켜세워주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모래알 같은 내 일상도 거대한 간척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긍정적인 말, 희망에 찬 말만 한 것은 아니다. 옳지 않은 일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흉을 봐야 할 일과 사람은 냉철하게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머리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마음에 와닿으면 곧 머리로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정의로운 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덕이었다. 거칠고 무례하던 사람도 그가 눈을 마주치고 그 말과 행동이 무슨 뜻인지 물으면 자신의 잘못을 멈추곤 했다. 그럼에도 공을 매길 땐 남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서 주변을 늘 밝게 만드는 사람, 화려함보다 편안함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모래알 같은 내 일상도 거대한 간척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스러운 눈빛이 아니라 더 아름다웠다. 투명하지만 장난기를 잔뜩 머금은 눈. 자신의 일상 속 황당무계한 일들을 익살스럽게 풀어놓거나 허를 찌르는 재치에 혀를 내둘렀다. 그 맑고 명랑한 눈을 하고선 입으로는 구수한 유머를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상사와 다소 부족한 예산으로 저녁 회식을 하던 날, 멋쩍은 상사가 양이 부족하지 않냐고 묻자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괜찮다며 집에 가서 피자 시켜 먹으면 된다는 그의 말은 살면서 들은 유머 중 손에 꼽게 창의적이라 우리가 앉았던 식당 자리의 위치까지 기억이 난다. 그의 말에 뼈가 없었음을 안다. 그의 말은 순도 100%의 장난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지혜와 재치를 가진 그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괴로우면 그를 생각한다. 커다란 갈림길을 마주했을 때, 그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우물 안에서 팔만 걸치고 밖을 구경하는 것과 폴짝 뛰어나가서 세상을 구경하고 다시 오는 것은 천양지차라며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던 사람. 도전의 과정에서 힘들 때마다 그의 아름다운 눈을 기억하며 괴로움을 털어냈다. 그 어떤 조언보다도 강력했던 그의 말을 기억하기에 나는 그의 눈에 담긴 지혜를 기억했고, 동경했다.




  도전을 마치고 돌아와 우연히 그를 다시 마주한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울고 있는 나에게 또 한번 실없는 농담을 꺼내면서도 맑은 눈으로 깊게 나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 어떤 물건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자 내 인생의 색채를 바꿔준 그의 눈빛. 그의 눈빛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눈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머릿속에 타이핑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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