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일러스트페어에서 적자를 만회할 계획을 새로이 세워야만 했다. 기부할 금액을 끌어다 써서 그런지 마음이 바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다. 막다른 길목을 서성일 때면 느닷없이 불쑥 새로운 길이 나타나곤 한다. 그 새로운 길은 이태원 H플리마켓이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플리마켓에 함께 나갈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코바늘로 손뜨개를 해 온 지 12년째이다. 코바늘로 뜬 소품으로 플리마켓에 나간 적이 있었다. 플리마켓에 함께 나갈 사람을 구한다고 글을 올린 L은 책을 판매한다고 했다. 나는 플리마켓의 성격에 맞게 책과 코바늘 소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틈틈이 떠 놓은 컵 받침대가 50개가 넘으니 이걸 가져가면 된다.
이번 플리마켓은 수제품과 기성품 그 무엇이든 판매해도 무방한 듯하다. 아무리 번화가라고 해도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길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엔 아기자기하고 블링블링한 소품이 제격이다. 내가 뜬 귀여운 컵 받침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가기를 기대하며 이태원으로 갔다.
종일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알려준 대로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갔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몇 분이나 걸었을까. 3분이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난생처음 와 본 길목이었다. 그런데 그 길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여러 번 보아서였다.
2022년 10월의 어느 날, 눈물로 가득했던 곳이 H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였다. 길목은 영상에서 본 것보다 더 좁았다. 그 좁은 길목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신나는 음악이 들려오는데도 참을성이 없는 슬픔은 급기야 차오르고 말았다. 플리마켓에 오는 분들을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꺼풀을 깜박였다. 눈물샘을 누르며 테이블을 꾸몄다.
우리나라에서 힙한 장소로 이태원을 빼놓을 수 없다. 더구나 놀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이곳에서 누가 책에 관심이 있을까 싶었다. 1종에 2권씩의 책만을 준비했다. 책보다는 컵 받침이 많이 판매되길 바라며. 플리마켓 오픈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옆 테이블은 아직이었다. 주최 측에서 관계자가 오더니, 옆 테이블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셀러가 급한 일이 생겨 못 오는 모양이었다.
테이블 대여 비용이 10만 원이고 당일 취소는 환불이 안 될 텐데,라는 염려가 들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비어 있는 테이블에 가져온 컵 받침을 쫙 펼쳐 놓았다. 오후가 되고 사람이 조금씩 많아졌다. 기억 모양으로 늘어선 플리마켓 중앙에서 디제잉도 열렸다. 그러나 토요일 5시가 다 되어가도 사람은 더 많아지지 않았다. 이 시간쯤이면 술집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을 만한데, 그렇지 않았다.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어느 셀러가 이태원 상권에 대해 귀띔했다. 참사 이후 상권이 죽어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호프집에서는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컵 받침에 관심 가져준 분이 많았다. “어떻게 만들었어요? 너무 예뻐요”, “솜씨가 장난이 아니네요.”,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파는 것처럼 해 놓아서 보기 좋네요.”, “튤립 봉오리가 정말 귀여워요.”, 하는 칭찬 세례도 받았다. 그 칭찬들이 다 판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MZ세대로 보이는 커플이 두 번이나 부스를 찾아 주었다. 커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맞춤이라도 한 듯 멋스러웠다. 남자분이 한참 책을 읽더니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는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부스를 찾아 주었다. 오자마자 글쓰기 책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책은 계속 읽고 있는데, 이제 글을 써볼까 해서요.”, 하고 답했다.
세상에나 놀러 나와서 책을 사 가다니. 내 책을 사준 사람 중 가장 힙한 분이었다. 이렇게 힙한 분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였다. 외모만큼이나 내면도 가꿀 줄 아는 훌륭한 MZ 커플의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 간 L은 배우이자 모델이라고 했다. 검색해 보니 5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러언서였다. 맙소사 연예인이랑 같이 플리마켓에 나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연예인답게 팬 분들이 L을 찾아왔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10명 내. 외였던 것 같다. 어쩐지 하나같이 오자마자 책을 펼쳐 보지도 않고 “이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어느 출판사 관계자의 말이 떠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에세이를 쓸만한 작가를 찾을 땐 무조건 유명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도덕에 어긋나는 불륜이나 범법자여도 상관없이 유명하면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아서 씁쓸했다.
L을 보니 알려진 만큼 누군가 찾아와 주긴 하니까 유명해지는 이점은 있다. 나는 인플러언서도 아니고 SNS를 보고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 그래도 지금 이대로가 좋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알려질수록 감당해야 할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세상으로 나오는 게 맞다. 그렇지 못하면 팬심으로만 가득 차오른 무조건적인 추앙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추앙이 서로에게 이로울 리 없다. 천천히 올라가도 내려가는 속도는 빠르다. 빠르게 올라간 자리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느리더라도 나의 글을 읽어주는 소수와 함께 호흡하며 나아가는 지금의 순간이 적당하다.
일러스트페어의 적자를 만회할 계획이 한 번 더 어긋났다. L과 부스 비용을 반반 나누어서 5만 원이 들었는데, 딱 그만큼 책과 컵 받침이 판매되었다. 하지만 물질보다 더 큰 소득이 있다. 이태원 거리를 살리려는 행사에 일조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생과 사가 동시에 일어난다. 하루를 살면 그 하루는 저물어 간다. 그 어느 지점에, 나의 쓰임을 다 할 수 있는 날이 있어서 감사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빗줄기가 굵어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그 길목을 다시 마주했다. 가여운 영혼을 위로하는 글들이 벽면을 대신하고 있다. 벽면에 가득한 글들은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기억이다.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얼굴 위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글을 읽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발걸음을 돌렸는데, 글이 눈에 밟혀 다시 돌아와 결국 책을 사 갈 때, 나는 크게 감동한다. 오늘 책을 사준 두 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분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