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과 비호감 그 사이 조언

호감, 비호감

by 이수아

사전적 의미의 호감은 좋게 여기는 감정이고 비호감은 성격이나 외모가 좋게 여겨지지 않음이다. 비호감에 빗대어 호감을 다시 바꿔 말하면 성격이나 외모가 좋게 여겨지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호감과 비호감이 감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감정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게 달라진다는 것도.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A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A가 하는 말과 행동은 좋게 보이고, B라는 사람이 비호감이라면 B가 하는 말과 행동은 좋지 않게 보이는 것. A와 B가 같은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호감이냐 비호감이냐에 따라 좋게 보일 수도,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언도 마찬가지다. 조언은 상대방을 돕기 위해 건네는 말이라서, 그 밑바탕에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 이상한 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 조언을 건넨 사람에게 느낀 감정이 호감이었는지 비호감이었는지에 따라 조언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늘 예외는 있는 법. 평소 호감이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당신이니까 제가 조언해 주는 거예요.”라는 말로 운을 띄울 때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거부감이 든다. 그 거부감은 호감을 비호감으로 만들기도 한다.




며칠 전 호감이 비호감으로 변해버린 순간이 있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동갑내기 지인 G와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나는 G에게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쓰고 있다고 했다. G는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무슨 원고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사랑, 책, 글쓰기에 대한 원고라고 하며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나는 “이미 초고를 다 써 놓은 상태인데 이게 정말 책이 될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하고 말했다.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책 안 돼요. 더 쓰지 마세요.”


내가 쓴 원고가 왜 책으로 묶일 수 없느냐고 다시 물었고, G는 “다른 사람이면 말 안 할 텐데. 수아님, 이니까 조언하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에게 안 하는 조언을 나니까 하는 거라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뻔한 . 선심 쓰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그 말을 들었을 때마다 번번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와, 이렇게 진부한 말을 서른여덟에 다시 듣다니, 등을 누가 쓸어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호감이라는 모래 위에 비호감이라는 파도가 들이치고 있었다.


G가 건넨 조언은, 글을 잘 쓰고 내용이 좋아도 처음 책을 쓰려는 초짜 작가의 책을 내주려는 출판사는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에세이 신간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 에세이는 경쟁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인 말이지만 이게 조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소설 써 놓은 게 있는데 책 한 권 분량은 될 거예요. 에세이가 포화상태라면 소설은 어떨까요?”

“소설도 포화상태예요. 안 돼요.”


나는 온갖 문학 장르를 말했고 G는 다 안된다고 했다. 장르를 떠나서 책을 낼 수 없다는 말을 간단하게 “출판 안 돼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책을 출간하는 초짜 작가들이 현재도 많은데, 나는 아예 책을 낼 수 없다고 하는 그 말이 참 씁쓸했다.


“글을 쓰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요. 책을 쓰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처럼 계속 글 쓰시면 되죠.”


도대체 G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책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책 쓰지 말고 글만 쓰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건 조언이 아니다. 꼬박 하루를 멍하게 있다가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G는 내가 책을 내는 게 싫은가, 평소 나를 비호감으로 여겼나, 시기 질투를 하나, 이런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이 길이 아니라고 해도 한번 가보겠노라 다짐한 사람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가봤자 예요.”라는 조언은 사기만 꺾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언이라는 단어로 보기 좋게 포장된 말. 그러니까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건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니었다.



힘든 길을 선택한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상대방도 힘든 길이라는 걸 알고 한 선택이니 응원과 격려가 희망 고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책을 내도 삶이 달라질 거라는 헛된 희망은 없다. G가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안 될 거라는 말만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있나.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상대방의 상황이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지만 출판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선 G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G와 알아 온 지 팔 년 동안 나에게 G는 호감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우호적인 감정일까. 안타깝게도 G는 호감에서 비호감이 되었고, 나도 G가 하는 일을 더는 응원하지 않게 되었다.


좋은 말만 한다고 해도 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래도 이유 없는 쓰기만 한 말, 대책 없는 말,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심 어린 조언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G에게 비호감이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없을 땐 말보다는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게 훨씬 낫다.




G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조언을 구한 것이었는데, G를 팔 년간 호감으로 여겨 왔는데,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희망을 끊어 버리고 위축되게 만드는 말을 건넨다면 그건 조언이 아니니, “똥 밟았네.” 하고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그 사람에게 미운 감정이 들겠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미운 감정이 올라오면 “영향력 없는 사람이 한 말인데 뭘 신경 써.” 하고 미운 마음을 접어두는 편이 이롭다. 접어둔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조언을 구한 일을 해내 게 되었을 때 다시 펼치면 된다. “자 봐라. 내가 해냈다.” 하고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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