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형식의 에세이
“수아야 너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 안 좋은 냄새.”
“조개 냄새가 나나? 우리 동네에 조개 광이 두 개나 있어. 자주 놀러 가서 그런가 봐.”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나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조개 냄새는 갯벌 냄새였다. 어머니가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날 돌본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갯벌로 가 조개를 캤다. 친구가 맡은 갯벌 냄새는 할머니의 냄새이기도 하다. 냄새만으로도 혀에서 짠맛이 느껴지는 듯한 짙은 짠 내였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같은 냄새가 났다.
어촌계가 있던 인천 연수구 동춘동 동춘마을에는, 두 개의 조개 광이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마을 사람들과 갯벌에서 바지락을 캤다. 산더미 같은 바지락을 실은 경운기가 줄을 이었다. 그것을 조개 광 앞에 쏟아내면 동산이 되었다.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할머니를 따라 조개 광에 드나들었다. 조개 광은 아이들에게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밥줄이었다. 바지락 까는 일은 어른과 아이를 가르지 않았다. 탱글하고 보드라운 바지락 속살을, 납품하는 상인에게 주고 소액을 받았다. 돈을 받는 날이면 할머니는 내 손에 천 원을 쥐여주었다.
“수아야 오양 이내 가서 맛난 거 사 먹어라. 친구도 하나 사주고 너도 먹고 놀아.”
천 원이면 오양 이 내서 먹고 싶은 것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바지 주머니 양쪽 가득 왕 방울만 한 사탕을 샀고, 어떤 날은 초코파이와 우유를 사 들고 친구와 조개껍질 무덤에 앉았다.
동네 아이들은 조개껍질이 쌓여 있는 곳을 뛰어다니며 발로 밟아 으깼다. 조개 광에 쌓여 있는 바지락 사이에서 보물 찾기도 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맛조개, 소라, 돌게를 찾고 놀았다.
큰 주전자 하나를 채울 만큼 모이면 광 한쪽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하얀 김이 안개처럼 조개 광을 채우고, 주전자 뚜껑이 파르르 소리를 내며 끌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삶아 동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내어주었다.
여덟 살, 내 손이 여물어지던 날이었다. 고모가 바지락 까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조개 칼은 어른의 엄지손가락만 했고 닳고 닳은 모습은 마치 초승달 같았다. 조개 칼은 어린 손에도 잘 감겼다.
바지락 꽁무니에 칼날을 대고 비틀면 맥을 못 추고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칼날을 집어넣어 반달 모양을 따라 가장자리를 훑어내었다. 한 번 더 헤집으면 바지락은 속살을 드러냈다. 발라낸 살을 할머니 통에 보태면 할머니의 입술은 바지락처럼 부채모양이 되었다. 조개 칼을 잡은 날부터 나의 살갗에서는 갯벌의 냄새가 났다.
갯벌은 넓고 깊은 바다 밑에 깔려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모습을 드러내고, 바닷물이 차오르면 모습을 감춘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감추는 건 갯벌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서울로 일하러 가면 할머니는 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나에게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고, 어머니가 내 곁에 서면 할머니는 바다 밑에 깔린 갯벌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바다가 되었다가 육지가 되는 신비의 땅. 그것은 갯벌이고 할머니의 일부이다. 갯벌은 바다를 정화해 준다고 해 자연의 콩팥이라 불린다. 갯벌은 넉넉한 할머니의 품처럼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할머니가 온정의 터전을 준 것처럼,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철새는 갯벌 한가운데에서 유유자적하다 미생물로 배를 채운다.
내가 아홉 살이던 1994년, 동네 앞까지 천지가 개벽했다. 대우 삼환, 동춘마을, 한양 아파트가 우르르 지어진 것이었다. 그해, 마을의 어촌계가 멈추고 동네 사람들의 한숨이 들려왔다. 갯벌이 매립될 거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동네 사람들은 갯벌에 나가지 않았다. 동춘마을을 포함해 근처 어촌계가 있던 4개의 마을 사람들이 진정서를 넣고 농성을 벌였다. 눈물로 호소해도 갯벌 매립은 시작되었다. 새로운 도시가 건설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고모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그것을 조개 딱지라고 불렀다. 조개 딱지를 사려고 마을에 정장 입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갯벌을 매립하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어촌계의 돈줄이 막혔으니 그 댓 가로 조개 딱지를 준 것이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은 조개 딱지를 천만 원에서, 많게는 삼천만 원까지 주고 사 갔다. 고모뿐 아니라 서로 앞다투어 그것을 팔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팔지 않고 아버지 손에 쥐여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갯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갯벌이 생활 터전이던 사람들의 몸에는 여전히 짠 내가 났다. 할머니에게도 깊이 배인 갯벌의 냄새는 아무리 옷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옷과 가족의 옷을 한데 모아 손빨래를 해서 내 옷에도 짠 내가 났다.
그 냄새는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승희와 6학년 때 한 반이 되었다. 그 친구의 혀에는 독이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내 앞을 지날 때마다 코를 틀어막았다.
아파트에 사는 승희 얼굴은 늘 빛났고, 옷에서는 향기가 났다. 날 놀릴 때마다 부끄러웠고 승희가 부러웠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집어삼킬 듯한 펄처럼, 부끄러움과 친구를 향한 부러움은 날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바다 위로 뻗은 긴 다리를 건너 허허벌판을 지나자 하늘로 치솟은 건물이 보였다.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높이였다. 아버지는 그중에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개 딱지를 이 아파트와 바꿨다. 저 맨 꼭대기 보이지? 저기가 우리 집이다.”
할머니의 땅 갯벌이 매립되고 그 위에 송도 국제 신도시가 세워졌다. 웅장한 도시 속 아파트는 나에게 배어있는 갯벌의 냄새를 당장이라도 지워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리 좋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의 가슴 저 밑엔 갯벌이 있었을 것이다.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할머니 가슴에도 물살이 들어찼을 것이다. 바지락 캐고 살던 삶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까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뱃속에 첫 아이를 품은 지 8개월 때, 할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이가 두 돌을 맞이하던 날, 남편과 아이를 안고 바다로 갔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자 아련하고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뚫려있는 모든 감각을 타고 파고들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무엇엔가 홀린 듯 갯벌로 걸어 들어갔다. 뽀글거리는 구멍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작은 게는 줄행랑쳤고 조각난 조개껍질은 손에 상흔을 남겼다. 잿빛에 감춰진 검은흙에서는 진한 갯벌의 냄새가 났다. 나에게서 지워진 줄 알았던 그 냄새는 그대로였다. 갯벌이 품은 냄새는 할머니와 나의 냄새이다.
둘째가 세 살이 되던 해, 남편이 송도신도시에 가자고 했다. 보트를 타러 가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작은 전동 보트에 올랐다. 강처럼 보이는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미간이 저릿했다.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갯벌의 냄새가 났다. 나와 할머니의 냄새는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유월이 되면 종종 갯벌에 간다. 아이들 손에 장갑을 끼우고 장화를 신긴다. 한 손은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는 호미 한 자루를 쥔다. 아이와 함께 갯벌에 발을 딛는다.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이 앞걸음을 포개며 할머니의 땅을 걷는다.
갯벌의 냄새를 안고 불어오는 유월의 바람은 할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짠 기운으로 눅눅해진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면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마신다. 깊숙한 곳까지 할머니 냄새로 가득 채운다.
시대가 변하면서 구도시는 화려하고 웅장하게 다시 태어난다. 많은 사람이 깔끔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누군가의 소박한 삶과 희로애락은 알지 못한다. 발전 뒤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러니 꼭 새로운 게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의 시대에는, 투박하고 불편하더라도 옛것을 간직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를 기억하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 동춘마을의 정확한 명칭은 ‘농원마을’이다. 1950년도 6.25 전쟁 이후 할아버지의 형제가 국가에서 난민 주택 50호를 받아 형성되었다. 피난민이던 마을 사람들은 맨손으로 흙을 벽돌로 만들어 집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