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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Dec 14. 2022

Ep 45: 기적의 기다림

한 밤 중의 연락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2009년 3월의 어느 날 밤, 23시가 넘은 시간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시를 했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후 이메일이 도착했다.


 귀국 5개월째, 나름 열심히 입사 지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나의 취업 인사권은 그 기회를 쉽사리 휘어잡지 못할 뿐이었다. 싸늘한 밤공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내 마음도 하염없이 움츠려 들었다.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보다는 취업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나의 자존감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을 때, 한 줄기 광명이 나의 가슴속에 따스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쌩판 모르는 익명의 헤드헌팅 회사 팀장의 이메일이었다.


 자정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 떨리는 가슴으로 궁금증을 억누르며 이메일을 바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에게 보낸 메일이 읽음으로 표시되었음에도 회신이 늦어지는 결례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은 온갖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쉬이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이메일 내용을 확인하니 내가 목표로 삼아가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굴지의 외국계 대기업 채용 공고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신중하게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며 보낸 이의 요지와 직책을 잘 확인한 후, 최대한 정중하게 회신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해당 기업에 대한 세부 조사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심산으로 노트 한 권을 펼쳐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그 회사에 대한 세부 정보들을 검색했고,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과 회사의 연혁 그리고 업무 관련 정보들을 상세하게 나열하며 적어 내려갔다. 적은 내용들을 외우고 또 외우며 혹시 모를 면접에도 미리 대비했다. 무슨 근자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회사가 내가 원하던 그 회사이고, 나는 반드시 이 회사에 입사하고 말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익명의 이메일 한통으로부터 사그라들었던 열정은 다시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좌절감은 희열로 바뀌었으며 얼굴에는 생기가 만연하였다. 하지만 그 행복감을 남들에게 표현하기는 싫었다. 심지어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말이다. 취업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홀로 그려보았지만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괜히 설레발을 떨면서 주변의 관심을 얻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기정 사실화되기 전까지 나의 또 다른 입사 지원은 완벽한 비밀에 부쳐지게 됐다.


'나의 절실함이 이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도 닿기를 희망하며..'


 아무도 모르게 입사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잔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언제까지 집에서 이렇게 빈둥거릴 거냐며 끝없는 핀잔을 주셨지만 나는 마음을 공고히 하고 입사 프로세스에 전념했다.


 헤드 헌팅 담당자에게 답장이 왔다. 당장 서류 전형에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통과했다고 가정을 하고 적성검사, 영어 회화 시험, 운전 시험 등의 정보 등을 공유하여주기 시작했다. 적성검사는 직무 적성 검사, 언어 능력 검사, 수리 능력 검사의 3단계 시험을 거치게 되며 상대 평가로 진행되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적성검사, 영어회화, 운전 등의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야만 추후 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서류전형은 가뿐히 통과하였고, 2009년 04월 0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7시까지 피를 말리는 상대평가의 날을 보내게 됐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지원자 중에 무조건 상위권에 들어야만 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2시간 30분 동안 3가지 검사 영역 시험을 무사히 마친 후, 회사에서 제공해 준 뷔페식 점심을 짧은 시간 동안 섭취하였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긴장한 탓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신속히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 갔던 노트를 펼쳐서 점심 식사 이후 이어질 영어 회화 시험에 대비했다. 영어 회화는 한 백인 남성과 실시하였는데, 헤드 헌팅 회사에서 알려주었던 팁대로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대신 최대한 자연스럽고 긴 문장으로 답하도록 신경 썼다. 그 후 자신감 있던 운전 시험까지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니, 어느새 하늘은 하늘색 옷을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이후였다.


 또다시 기다림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마음을 다잡기로 마음먹었다.


'떨어졌다면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고, 나는 계속 구직 활동을 준비하며 기회를 엿보면 돼!'


 스스로를 달래 가며 마음을 추슬러보려고 노력했지만, 너무나도 마음에 쏙 드는 회사와 직무였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합격을 열렬히 갈망하는 나의 외마디 외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일주일이 지날 무렵, 탈락했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휘어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탈락했음을 직감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을 무렵, 헤드 헌팅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2009년 04월 18일, 다소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전형에 합격하여 2009년 04월 23일 면접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기존에 준비해 두었던 노트를 다시 꺼내 들고는 예상 질문과 답변이 익숙해질 때까지 달달 외우고 또 외웠다. 이 당시 이 회사 입사를 위해 정리해 놓았던 노트는 어느새 두터운 책 한 권이 되어 나의 갈망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미소 띤 얼굴을 항상 유지하도록 신경을 썼고, 어떤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태연한 분위기로 위트 있게 넘어갈 수 있도록 정신 무장을 단단히 했다. 면접 당일 해당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한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연기를 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시작된 압박 면접은 2시간여 가까이 이어졌다. 그 2시간 동안 나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면접관들의 질문 공세를 잘 받아쳤으며, 종종 분위기를 주도하며 화기애애한 공기 속에서 면접관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친 후 나오면서 바깥에 상주하고 있던 직원에게 언제쯤 결과를 알 수 있을지 문의하여 보니 보통 채용 절차상 수일이 걸리기 때문에 확답을 드릴 수 없다는 아쉽지만 뻔한 답변만 들은 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까? 채용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JJ 씨!"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떨어졌나?'
'분위기 좋았던 것 같은데?'
'며칠이 걸린다던 합격 전화는 아닐 테고, 불합격 통보인가?'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여유로운 척 오늘 면접 보시느라 힘드셨겠다며 안부를 물어가면서 전화 통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인사 담당자의 말이 이어졌다.


"다름이 아니라.."


 담당자가 애간장을 태우는 기술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아리송한 말투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면접관님들과 상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합격을 하게 되셨어요. 기쁜 소식을 빨리 알려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축하드립니다!"
"네?!"
"아.. 안 좋으신가 봐요?"
"아.. 아니요.. 너무 좋아서 지금 하늘을 나는 중입니다! 하하하.. 하늘에 있어서 전화 연결 상태가 조금 안 좋으시죠?"
"호호호.. 재미있으시네요.. 다음 면접은 OJT 면접입니다. 잘 준비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 담당자님!"
"저는 한 게 없습니다. JJ님이 잘하셔서 좋은 결과를 얻으신 건데요.. 아무튼 즐거운 저녁 시간 되시고,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면접 당일 합격 통보를 받아 우주까지 날아갈 듯 기뻤지만, 또 한 번의 채용 프로세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이렇게 힘겹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만약 탈락하면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절대 떨어질 순 없지!'
'그나저나 뭔 놈의 회사가 이리도 채용 절차를 복잡하고 길게 만들었대?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네..'


 그렇게 큰 이변 없이 최종 후보 두 명이서 또 한 번의 OJT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두 명중 한 명은 떨어질 거라는 면접관의 가슴 철렁한 대답을 듣게 되었고, 홀로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아주 다이내믹한 경험이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절실하게 준비하였고, 그렇게 차곡차곡 합격의 문에 성큼성큼 다가갈 수 있었다. 50%의 확률 게임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확률을 50%까지 끌어올려놓은 것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들게끔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이토록 원하고 갈망하던 이 회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애초에 지원했던 지역은 아니었지만 서울 지역으로 재배치되면서 길고 길었던 취업의 험난한 길을 비로소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입사 동기에게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인사 담당자는 나와 내 경쟁자 모두에게 다른 지역에서 일할 수 있겠냐는 전화로 연락을 취했고, 우리 모두는 좋다는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운 좋게 최종 OJT 면접에 합격했던 우리 둘 모두는 탈락의 쓰라림을 겪지 않고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서울 지역 관리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서울 지역으로 입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OJT 면접 이후에도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신체검사를 합격해야만 했는데, 친구들과 합격 축하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던 탓에 다소 걱정은 하였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합격해서 2009년 06월 01일 부로 외국계 기업 지역 관리자로 입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3개월에 걸치는 채용 프로세스의 최종 우승자로 자리매김하며 이제는 부모님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었다.


"저 서울에 취업했어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만드는 것은,
미래를 임하는 나의 자세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확실하게 만드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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