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에세이 04. 5분이면 풀릴 일

by 지노무사

한 사기업의 '직장 내 괴롭힘' 외부위원으로 참석했다. 내 역할은 조사보고서를 검토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었다.





이른바 노무사의 도장값이 발생하는 일이다.




괴롭힘 사건은 보통 상사의 갑질이나 폭언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건은 특이하게 직원들끼리 서로를 가해자로 신고한 경우였다.




심지어 둘은 10년 넘게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다.




사소한 문제로 감정이 틀어졌고, 결국 시비가 붙은건데 한 쪽이 괴롭힘으로 신고하자 상대도 보복 신고로 맞섰다.





조사보고서를 읽던 한 위원(변호사님)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그냥 싸운 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누가 누굴 괴롭힌건지, 우위성 여부도 모르겠고.. "

"소주 한잔하면서 풀 일을 회사 차원으로 끌고 온 것 같은데요"



모두 난감한 얼굴이었지만 일단 신고가 접수된 이상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했다.





"중재는 해보셨나요?" 내가 팀장님께 물었다.



"네, 부서 차원으로 했지만 둘이 얼굴도 보기 싫어하더군요. 이제 말도 안 합니다" 팀장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대로 판정을 하는 것도 좋지만, 10년이나 친하게 지내왔는데 괴롭힘? 뭔가 석연찮아서 한 명씩 불러 물었다.





"신고를 취하할 생각은 없나요? 결과에 따라 둘 중 한명은 징계를 받고 인사이동 조치 될거에요. 하지만 취하한다면 모든게 없던 일이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둘은 시간차를 두고 똑같은 대답을 했다.

"형이 먼저 사과하면요" "동생이 먼저 사과하면요"





그럼 그렇지. 결국 자존심 싸움이었나. 우리는 두 사람을 작은 회의실에 넣고 5분의 시간을 줬다.




그리고 5분이 지나자 둘은 사이 좋게 담배를 피우고 돌아와 신고 취하서에 나란히 사인했다. 2달을 끌어온 골치 아픈 일이 5분 만에 없던 일이 된 것이다.





퇴근 길, 차가 꽉 막혔다.




옆 차가 깜빡이도 없이 무작정 끼어들었고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클락션을 빽 누르려다 아까 그 순간이 떠올라 입을 쭉 내밀고 중얼거렸다.





"그래, 화내서 뭐하겠어. 5분이면 풀릴 일인데"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묶는 법이 아니라 푸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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