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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Mar 10. 2023

신부의 볼을 꼬집던 그 여자는 행복할까


그녀는 신부대기실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하이톤의 목소리와 상당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축하해! 벌써 네가 결혼을 하고. 옛날에도 귀여웠는데 지금도 귀엽네!"

그러면서 왼손을 올려 나의 오른쪽 볼을 꼬집었다. 곱게 화장한 신부의 얼굴을.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해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나간 후 신부도우미도 이게 무슨 경우냐며 나의 화장을 고쳐주었다. 신부화장을 한 얼굴에 손대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9년 전이다. 나의 볼을 꼬집던 그녀는 사촌언니. 그 당시 나이 30이 넘은 언니는 아무래도 어린 내가 먼저 결혼하는 것이 배가 아팠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엄마는 나에게 남편을 소개해 준 다른 사촌에게 왜 본인의 딸에게 먼저 소개해주지 않았냐며 몇 번이나 질책했었다. 내 앞에서까지. 소개도 받지 못하고 결혼도 늦어지는 자신의 딸이 몹시도 안타까웠나 보다. 그런 엄마의 밑에서 아무리 괴로웠어도 그렇지 화풀이를 나한테 하나. 신부의 얼굴을 꼬집어가면서.


축하도 받았지만 부러움과 질투까지 받아버린 결혼. 벌써 9주년이 다가오는 결혼생활이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사촌언니와 같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행복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에 백 퍼센트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좋은 일, 나쁜 일, 기쁨 또 슬픔 그 모든 게 섞여 지금의 행복한 우리를 만들었다. 모든 게 좋았다고도 할 수 없고 모든 순간이 기쁘다고도 할 수 없지만 나는 행복한 것이 분명하다.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겨울방학 내내 붙어있던 아들이 학교에 가기를. 육아에 지친 마음도 달래고 조금 여유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견고한 행복 안에서 꿈틀대는 우울함도 잠재우고 싶었다.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는 게 보이듯 우울한 시간도 무척이나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럼 난 출렁이는 파도 밑 작은 돌멩이처럼 떠오르지도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한 채 물살에 쓸려지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 불안한 하루를 또 버틴다. 매일 기분이 좋을 순 없으니 그러려니 하며 기꺼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면서. 봄이 온다면, 3월이 온다면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내 표정도 펴지겠지. 그렇게 착각도 하면서.


사실 이런 생각도 지나고 나면 모두 행복으로 기억될까 싶다. 이런 우울도 괴로움도 충분히 행복한 일상의 단면이 아닐까. 내 볼을 꼬집던 그녀도 행복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나름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겠지.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찬란하게 행복한 삶. 세상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그녀의 동생 결혼식에서였다. 그녀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도 잘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녀의 손엔 명품가방이 들려 있었고 내 손엔 딸아이의 작은 손이 포개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인사하려는 내 눈길을 못 봤는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 그녀. 우리 사촌지간이긴 한데 말이지.




"세은이 누구 딸~?"

항상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쪽은 나다. 몇 번이고 '엄마 딸'이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자꾸 되묻는다. 그럼 아이는 곧 귀찮아하고 그런 아이에게 토라지는 나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다.


"다른 엄마 딸 아니야?"


"아니~ 내가 다른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겠어?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돌멩이를 꺼내 나에게 건네는 건 당연하게도 나의 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마음은 맨질맨질 해져서 헤벌쭉 웃어버렸다. 이런 웃음도, 예고 없이 들이치는 눈물까지도 모두 찬란한 나의 행복일 것이다. 그 각색의 행복한 순간들을 사랑해야겠다. 모든 순간이 다 괜찮은 거라고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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