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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Feb 24. 2023

손이 바삭바삭 갈라질 운명입니다


엄마 손은 너무 까칠까칠해. 아프잖아!
 앞으로 로션은 내가 바를 거야.
 내 얼굴 아프잖아.



초겨울까지만 해도 엄마 손은 너무 부드럽다고 했던 아이가 변했다. 아니. 내 손이 변한 건가. 엄마손이 너무 부드럽다며 어디서든 손잡자던 이쁜 딸은 어디 가고 자기 얼굴 만지지 말라는 아이가 나타났다. 그래. 보송한 솜털이 가득한 보들보들하고 어여쁜 얼굴이 아팠겠지. 엄마의 손 때문에.



운명을 믿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고 변는 게 세상살이인데 그깟 운명에 기대어 내 인생을 내어주기는 싫다. 인생의 경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내 노력에 따라서도 그리고 게으름에 따라서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 손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까칠까칠. 바삭바삭. 아무리 로션을 발라도, 약을 발라도 낫지 않는다. 손가락이 마른 나뭇가지 10개로 변한 느낌이다. 이것은 운명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내 손의 운명을 눈치챘어야 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말이다. 엄마의 젊었을 적 얘기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엄마의 손'이다. 결혼을 해서 집안일을 하고 나를 키우며 생긴 습진. 이 고약한 습진이라는 녀석은 엄마를 많이 괴롭혔던 모양이다. 손이 갈라지고 피가 나 피부과에 가서 약을 지어먹었는데 그 약이 자꾸만 엄마의 살을 찌워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 들을 때마다 짠한 마음이었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의 약하디 약한 피부를 꼭 빼닮았다. 결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생겨버린 습진까지 닮아버렸다. 운명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맨손으로 젖병을 닦고,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면 또 손을 닦고. 아이들이 어릴 땐 정말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세 판씩 개다 보면 어느새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난다. 그제야 아차 싶어 습진약을 발라보지만 배고프다고 밥 달라는 아이의 말에 곧장 주방으로 가 핸드워시로 손을 싹싹 씻어버린다.


손가락, 손등, 손바닥 안 갈라지는 데가 없다. 손주름이 생기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라질 수 있다. 그중 가장 아프고 쓰라린 곳은 손가락 끝이다. 바로 엄지 손가락. 택배상자를 정리하면서도, 아이의 빵봉지를 뜯어주다가도 엄지손가락에 힘이 빡 들어가는 순간 갈라진 틈새는 더 벌어진다. 조금 아물었다 싶다가도 다시 피가 맺혀 주방 어딘가에 꼭 묻히고 만다.

이 정도로 갈라졌을 땐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귤껍질을 깔 땐 더더욱 조심조심.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9개의 손가락으로 귤을 깐다. 손가락이 9개나 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귤과 귤껍질 사이에 집어넣어 버린다. 아아. 난 정말 바보다. 따갑고 쓰린 손가락을 물에 씻고 수건에 닦고 있으면 귤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올망졸망 동그란 눈망울을 하고서. 그럼 난 다시 귤에 집중한다. 엄지손가락 따위 조금 따갑든지 말든지.


누가 내 손을 보면 "손이 이게 뭐야!" 하며 나보다 더 걱정을 한다. 이젠 따끔거리는 약간의 고통에 익숙해져 버려서 별다른 감정도 없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애 키우며 서러웠던 적을 말하라면 내 손의 습진을 말할 거지만.

건조한 온 겨울을 바삭바삭한 손으로 보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그때쯤이면 아이의 보들보들한 얼굴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 예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도 해본다. 오늘 밤 로션을 듬뿍 바를 것이다. 잠깐 촉촉해진 손으로 잠자는 아이들의 머리칼을 맘껏 쓸어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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