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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l 22. 2022

여름엔 각방이지

남편과의 좁혀지지 않는 온도차



팬티바람 남편이라니


그날따라 신경이 곤두섰다.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들은 아침부터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신나 했다. 눈뜨자마자 나에게 "엄마! 밥!"을 외치며 나의 본분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배고픈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챙겨야 하는 나로서는 모든 것에 신경이 가는 주말이다.


평일엔 모두를 내보내고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집안일은 쌓여 손은 바쁘지만 모든 걸 나에게 맞추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주말은 다르다. 네 명이 좁은 집에서 이리저리 부딪혔고 아침부터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정신없는 육아 중에 식구들의 배고픈 입까지 3번이나 책임져야 하는 주말은 주부로서 부담스럽다. 입맛이 제각각인 우리 넷의 식단을 맞추고, 조율하고, 불만이 있는 아이를 달래기까지 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밥상을 차려 식구들을 불렀는데. 남편은 팬티바람으로 식탁에 나타났다.


"아니, 왜 또 팬티바람이야. 옷 좀 입어. 그러고 밥 먹을 거야?"


1절만 할걸. 복잡한 머리 탓에 속마음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쏟아졌다.


"세은이 좀 커봐. 아빠가 맨날 팬티만 입고 있는데 좋겠어? 지금도 별로 안 좋아해. 어휴."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투로 말하고는 남편의 표정을 슬쩍 봤다.

아차, 좀 더 상냥하게 말할걸.




"덥다. 더워서 그래. 옷을 다 벗어도 더운걸 어떻게 해. 에어컨 온도를 좀 내리던지. 추운 사람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더운 사람은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 온도를 내리고, 애들이 추울까 봐 걱정이면 긴바지를 입히는 게 낫지 않겠어? 나는 더워도 참고 자기랑 애들한테 맞추려고 노력은 해. 자기는 애들이랑 자기한테만 맞춰놓고 나는 왜 생각해주지 않아?"


말수가 적은 남편이 이렇게까지 불만을 길게 말했다는 것은 화가 났다는 뜻이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화내고 있었다. 이쯤에서 잘 달래야지 하루를 웃으며 함께 보낼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니 남편 말이 맞았다. 남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전혀 생각해주지 않았다.




나는 항상 춥다. 수족냉증이 심해서 한여름에도 양말과 이불이 필수다. 발과 무릎이 항상 시린데 둘째 출산 후에 증상이 더 심해졌다. 춥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세게 틀면 아이들이 콧물을 흘린다는 이유로, 에어컨 온도는 높게 설정되어 있었고 남편은 더웠다.


남편은 한겨울에 맨발 외출을 해도 끄떡없는 사람이다. 겨울에도 얇은 이불 한 장이면 충분하다. 이런 사람이 보내는 여름은 어디에서나 땀과 함께다. 나와는 참 다른 사람. 나는 남자 형제가 없어서 남자들은 다 이렇다는 남편의 말이 미심쩍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추위를 타는 나와, 더위를 타는 남편. 온도가 이렇게도 안 맞는 사람끼리 산다는 것은 조금 외롭기도 하다. 7월이 되자 남편은 밤마다 아이들 놀이방 매트에 이불을 깔기 시작했다. 옆엔 선풍기를 틀어놓고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불 꺼진 방에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환하게 불 켜진 안방으로 들어온다. 혼자서 큰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을 하며 뒹굴거리는 내 옆에는 새까만 새벽만 있었다.


가장 가까이 사랑하는 남편과 자꾸만 반대로 말한다. 에어컨 바람이 조금 춥다고 하면 남편은 덥다고, 가을에 쌀쌀하다는 말엔 시원하다고 한다. 내가 카디건을 꺼내 입으면 남편은 덥다고 옷을 벗는다. 우리의 온도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은 우리를 배려하고 있었다. 남편의 팬티바람 옷차림은 단순히 옷을 벗은 게 아니라 더워도 참아주는 마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를 위해 에어컨 온도 한번 못 내리고 눈치만 보며 옷을 하나씩 벗을 뿐이었다. 나는 남편의 배려심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어제도 놀이방 매트에 이불을 깔았다. 발 밑엔 선풍기를 틀고. 핸드폰 충전기를 옆에 끼고서.

우리 가을에 다시 만나자.

그래, 여름엔 시원하게 각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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