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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Mar 24. 2023

네 덕분에 웃는다는 그 말


매일매일 웃을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나에게 하루동안 웃는 순간은 정말 몇 초 되지 않을 것이다. 종일 집안일과 육아에 치여있는 주부가 웃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래더미다. 어제 돌려놓은 빨래에 오늘 아침 일찍부터 돌려놓은 빨래가 벌써 건조기 속에서 바삭해져 있다. 개고 정리하고 치우고 또 치우고. 끝도 없이 집안을 발발거리다 보면 웃음은커녕 한숨만 푹푹 나온다.

조금 숨좀 돌려볼까 커피 한 잔 꺼내놓 나면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곧 울렁울렁. 내 정신을 지배하던 나의 작은 파랑새는 요즘 몸으로 신호를 보낸다. 자꾸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육아의 무게 때문인지, 주부라는 부담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삶 자체가 버거운 건지.


잠시 얼음과 커피가 가득 찬 컵에 기대어 앉다. 그럼 학교를 마친 첫째 아이가 온다. 삐삐삐 도어록을 누르고 "엄마!"하고 부르면서. 기분이 좋은 아이는 무엇엔가 잔뜩 들떠서 겉옷도 벗지 않고 끊임없이 재잘재잘 거린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얘기,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던 얘기, 밥이 맛있었다는 얘기. 그럼 나는 어느새 웃고 있다. 아이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머리가 아팠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금은 말수가 줄어든 나지만 결혼 전에는 상당한 수다쟁이였다. 하루종일 일하고 온 엄마를 붙잡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면 엄마는 곧 피식 웃곤 했다. 그러면서 꼭 "덕분에 웃는다."라고 했다. "하루종일 웃을 일이 없었는데 문선이 덕분에 웃는다."라고 말하며 웃는 그때 엄마의 표정은 조금 행복해 보였다. 나 덕분에. 그러다 몇 번, 이제 그만 좀 말하라고 했던 날도 있었지만. 하하. 어쨌든 그 말은 참 듣기가 좋았다. "덕분에 웃는다." 


2학년 아들의 학교가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알림장에 부모님 숙제가 붙어있었다. 비록 3가지지만 평소 생각해보지 않아 곧바로 적어줄 수가 없었다. 조금의 고민 끝에 적은 나의 기쁨과 행복 리스트.


엄마가 제일 좋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때,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려는 모습, 환하게 웃을 때, 밥 맛있게 먹을 때, 천사처럼 자는 모습.


아이는 내가 쓴 것을 보고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알림장을 고이 가방에 챙겨 넣고는 "내가 오늘 밥 맛있게 먹어서 엄마 행복했겠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또 웃었다. 아이 덕분에. 기쁘게.



엄마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육아는 정말 힘들지만 힘든 만큼 행복한 것 같다고. 아이들만 보고 살며 나 자신은 없어지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나마 아이들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찾는다. 나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도, 웃게 하고, 살게 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이다.

어느새 부모님을 웃게 하는 딸에서 아이들 덕분에 웃는 엄마가 되었다. 젊었을 적 나를 보고 웃던 엄마처럼 이제는 내가 웃는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쏙 빼닮아서 나도 조금은 행복해 보이겠지.

 오늘 아침 둘째 아이는 양치질을 하면서도,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괜히 깔깔거리며 나를 보고 웃었다. 엄마 나 좀 보라며 반짝이는 얼굴을 나에게 들이민다. 나는 정말 아이들 덕분에 웃는다. 로지 아이들 덕분에.


"네 덕분에 웃는다"는 그 듣기 좋았던 말. 그 말을 아이들에게 해줘야겠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웃음이 삶의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기뻐하고, 아이들은 나의 웃음을 보고 또다시 웃어주겠지.

오늘도 함께 웃어야지. 그리고 말해줘야지. 네 덕분에 웃는다고, 네 덕분에 엄마는 많이 행복하다고.




나의 숙제였던 기쁨과 행복 리스트, 학교 공개수업에서 아이에게 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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