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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Dec 23. 2022

예민한 아이의 공부는 괜찮을까?

 

 하지 마! 내가 다 풀면 채점하라고!!



 
아이는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다 멈추고 내 손만 바라봤다. 한 문제, 또 한 문제. 동그라미가 늘어갈수록 아이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졌다. 연필을 든 오른손은 그대로 멈췄고 눈으로는 동그라미 개수만 세고 있었다. 그러다 안 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하지 마! 내가 다 풀면 채점해. 집중이 안된다고!” 

결국 울먹이기 시작했다.




올해 8살인 아이는 많은 것에 예민하다.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과 친구관계까지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다. 식감이 예민한 탓에 편식이 심한 아이. 양파와 당근의 아삭 거림, 계란의 미끈함 등 많은 음식들은 아이의 예민 레이더망에 걸렸다. 많은 음식을 뱉어내기도 하고 먹어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때마다 도저히 못 먹겠는지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나를 쳐다보곤 했다. 무조건 안 먹겠다 떼 부리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안쓰러운 예민한 아이. 옷에 대한 촉감도, 친구관계에서도 자신이 정해놓은 디테일한 기준점을 넘어서면 참지 못하고 달려오는 예민한 우리 아이. 이런 아이가 공부에서도 예민한 것은 당연했다.


그저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빨간색 색연필을 들고 열심히 풀어놓은 아이의 수학 문제를 먼저 채점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열심히 굴리던 머리를 멈추고 멍하니 내가 채점하는 옆 페이지만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터져버렸다. 틀린 문제가 없음에도 아이는 짜증을 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엄마의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와 문제풀이에 집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동그라미만 쳤을 뿐인데 죄인이 돼버린 나는 미안하다고 다 풀면 채점하겠다고 사과해야만 했다.  

틀린 문제가 하나라도 나왔을 땐 눈물은 당연. 모든 행동을 멈추고 틀린 문제에 매달렸다. 하던 공부를 마저 하면 좋을 텐데 무조건 틀린 문제부터 고치겠다고 한다.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지 생각하다가도 답답해진다. 틀린 문제부터 풀면 하고 있던 공부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데 굳이 왜 틀린 문제로 아이의 연필은 옮겨갈까.


모든 것에 완벽하고 싶은 마음인 건가. 무엇하나 삐져나오지 않는 바른 길을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아이. 공부에서조차 조금이라도 어긋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상처받을 일도 많을 텐데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 낮아도 괜찮데. 그럼 마음이 조금 편해질 텐데.

아직 어린 8살. 성적이 중요한 시기도 아니고, 그저 조금의 성취감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공부를 하며 점차 발전해가는 자신을 느껴봤으면 했다. 빨간 동그라미 개수 세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엔 아직 작은 8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1학기 동안 아이의 예민함은 완벽주의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선생님의 생각이 다를까 봐 발표 한 번 하지 못했다. 작은 단원평가와 받아쓰기에서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나에게 받아쓰기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씩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걸까. 절대 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걸까. 단원평가와 받아쓰기가 예정되어 있는 날 아침엔 비장한 목소리로 "갔다 올게!" 하며 등교하곤 했다.


주변의 말, 시선, 관계에 예민하다 보니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 속상할 일을 대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아이는 공부를 선택했다. 한 문제 틀리는 것을 싫어했다. 틀려도 괜찮다, 노력하고 발전하면 그걸로 훌륭한 거다, 아무리 얘기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무엇하나 가볍게 넘기는 일이 없는 아이다.

물론 장점은 있다. 항상 노력하고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배운다. 하지만 이런 성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아이는 마치 출근하기 싫은 어른의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참으며 "학교 가기 싫다."라고 중얼거렸다. 학교 입학 전부터 우려했던 일이었다. 안쓰럽고 답답하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로서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성장이 빠르다. 우리 집 아이도 어딘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2학기 개학을 하고 학교로 가는 아이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학교에 가는 등굣길, 학교 건물, 교실, 선생님까지 이제는 익숙해진 모든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지 1학기에 불안해하던 눈빛이 사라졌다. 아이는 여름방학 동안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크게 키워놓았다. 분명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은 물론 조금의 자랑까지 곁들인 모습도 보였다.


담임선생님과의 2학기 상담전화에서 확신했다. 아이가 달라졌구나. 많이 성장했구나.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아이의 모습은 놀라웠다. 틀리더라도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는 모습, 자신이 잘하는 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모습. 1학기 때와는 달리 자신감이 가득 차 보여 엄마로서 뿌듯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자존감이 높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그동안 "잘하고 있어! 지금도 충분해!"라고 응원했던 말이 아이에게 힘이 되었는지 학교에서 마음 놓고 생활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예민한 아이가 1학년이 되어 학교를 가고,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성장하는 모습까지. 아이 자신도 힘들었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조금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 노출되는 다양한 외부 자극에 하나하나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아온 아이. 기특하게도 예민함을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해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힘든 시간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뀔 때마다 공부에서도 학교생활에서도 좌절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예민함이 아이에게 위태롭게 붙어있지만 세심하게 위로해주고 지지해준다면 잘 극복해 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작은 실패에서도 극복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또다시 한번 이겨내는 경험을 가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을, 잘 성장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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