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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Dec 16. 2022

비밀 산타로 변신할 시간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마인드맵을 그려나가듯 몇몇 단어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연말-새해-나이 한 살 더?!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마냥 기쁘기보단 현실적인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벌써 30대 중반이라며 탄식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30 후반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얼마 전 남편과 처음 만난 지 10주년 되는 날엔 우리 둘 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함께 아귀찜만 먹으며 그날을 흘려보냈다. 이토록 우린 예뻤던 과거를 돌이켜볼 여유도 없이 현실에 푹 담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현실은 크리스마스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아직 맑고 투명한 동심을 가진 어린이들을 지켜줄 의무가 있는 중요한 시기다. 가을이 다 끝나갈 무렵부터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제 산타할아버지가 일을 시작했을까?"라는 물음부터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집안까지 들어오는 거지?"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도 많다. 아이들의 물음엔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답해준다.

산타마을 요정들이 공장에서 온갖 선물들을 만들어놨을 거야.
산타할아버지를 도와 선물을 나눠주는 요정들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각 나라마다 산타할아버지가 있지 않을까?
빛의 속도만큼 빠른 썰매를 타고 다닐 수도 있어.
산타할아버지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지도 몰라.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작은 머릿속으로 얼마나 큰 상상과 예쁜 그림을 펼치며 산타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참 귀여운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다리는 건 산타할아버지뿐이 아니다. 그 예쁜 상상의 끝엔 선물이 있다.

나의 숙제는 비밀 산타가 되어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알아내야 한다. 어렸을 땐 '무슨 선물 받고 싶어?' 하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줬지만 이제는 아니다. 산타할아버지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 질문에 회피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쓰고 있는 방법은 편지 쓰기다.


"응. 아니야. 편지 써서 붙여놔야 산타할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선물 준비하시지."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 쓰자는 말로 아이들을 유인했다. 다 큰 것 같은 8살도, 그저 귀여운 6살도 받고 싶은 선물을 생각해내는데  마냥 신이 났다. 날짜를 쓰고, 편지를 쓰고, 그림까지. 없는 솜씨지만 정성을 다해 쓴 편지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나에게 가져왔다. 흐흐. 순진한 아기들.




트리 옆 벽면에 아이들의 편지를 잘 붙여줬다. 산타할아버지가 자신들의 선물을 잊지 않고 가져다주실 거라고 굳게 믿는 아이들. 이젠 내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너무나 투명하고 예쁜 마음을 지키러 나간다. 선물을 사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물건들이 곧잘 품절돼서 선물을 구하러 다녀야 할 위험이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정아빠가 기꺼이 산타할아버지로 나타나 아이들에게 직접 선물을 전해주셨었다. 어린 첫째는 놀란 얼굴로 산타할아버지를 보며 신기해했고, 더 어린 둘째는 무섭다고 귀엽게 울기만 했었다. 첫째의 4살 크리스마스가 얼마 지난 어느 날. 산타할아버지한테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났었다는 아이의 말에 더 이상 아빠는 오지 못하셨다. 아빠가 많이 아쉬워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젠 내 눈에만 보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서 선물을 놓고 가신다. 산타 어플을 통해 트리 사진 옆에 산타의 모습을 합성하는 것인데, 작년까지 잘 속아준 산타 어플 사진에 올해도 잘 속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산타를 상상하고, 편지를 쓰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할아버지는 산타가 되고, 나는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 덕분에 모두 한마음이 되어 12월 내내 서로를 생각하고 마음을 쓴다. 새하얗게 내리는 눈처럼 우리에게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사랑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다. 이번에도 선물을 끌어안으며 웃어줄 아이들을 생각하며 비밀 산타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3살 세준, 4살 세준.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빠.


3년 전, 2년 전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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