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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Aug 11. 2023

우울이 지나가고 난 자리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우울이 웬만큼은 지나갔다. 이제는 하루의 시작을 기대하기도 하고,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낼까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누워있는 시간보다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가고, 생각만 하기보다 행동으로 실행하는 부지런함이 다시 나에게 생겼다. 밤마다 한알씩 챙겨 먹어야 하는 우울증 약도 가끔은 잊고 그냥 단잠에 들기도 했다.

최소 6개월 이상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직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지만 곧 약을 먹지 않게 될 날을 기대하는 중이다. 당장 우울함이 없어지는 것보다 이렇게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왔다가 어느새 사라지곤 했던 우울증을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또다시 찾아올 것만 같은, 금방이라도 만나질 것 같은 우울증. 나에게 참으로 살갑고도 못된 우울증은 내 곁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한동안 아이들 요리만 겨우 했던 내가 남편과 함께 먹을 음식을 몇 개 하기도 했다. 이곳저곳 집안에 쌓인 먼지를 조금씩 닦아보기도 하고,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기도 했다. 화장실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에도 화내지 않았고, 혼자 있는 한낮에도 더 이상 무기럭하지 않았다. 주부의 우울증은 청소와 정리정돈이 잘 되어가며 함께 나아지는가 보다.


이제는 아침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 주방에 불을 켠다.

하루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항상 헝클어져있던 잠자리가 이제는 깨끗하게 정리된 걸 보니 건강해진 나의 마음이 실감 나기도 한다. 이렇게 우울이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우울증을 다시 맞닥트릴 것만 같아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꾹꾹 눌러 작게 만들고 잘 정돈된 마음으로 오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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