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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11. 2023

너랑 나랑, 산책 시작


굉장한 집순이. 그게 내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집에서 할 일도 많고, 편하게 쉴 수도 있는 나의 집. 그런 집이 제일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너무 오래 집에만 있었던 걸까. 결국 무기력해질 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우울의 바다에서 몇 달 동안이나 열심히 헤엄쳐 다니다가 마침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산책 덕분이다. 요즘엔 하루 15분, 많게는 1시간도 바깥활동을 한다.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면 조금씩이라도 햇빛을 보는 게 중요하다며 매일 꼭 바깥활동을 하라고 했었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꼭 무기력증까지 함께 찾아오곤 했는데 그럴 땐  바깥활동을 하러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집에만 콕 박혀 있던 나를 밖으로 이끌어 준 건 바로 강아지. 얼마 전 가족이 된 솜이를 위해 시작한 산책이 내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2번이나 파양 되고 우리 집에 오게 된 솜이. 새로운 가족과 집, 모든 게 낯설 텐데 새 주인이 자꾸 끌고 밖으로 나가서 힘들어했었다. 그래도 자주 산책해야 적응도 하고 나랑도 친해지겠지 싶어 함께 나갔다. 밖으로, 또 밖으로.


솜이도 나도 처음 함께하는 산책은 힘들었다. 꼬리를 내리고 무섭다고 주저앉고, 집 쪽으로 가자고 버티기만 했던 솜이. 그런 솜이를 안아주다가 같이 걷다가 쉬기도 했다. 처음엔 10분, 15분 정도였던 산책 시간. 솜이도 나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였으니 그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우리 둘 다 집에서 멀어지면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불안하고 또 힘겨웠다. 그래도 우린 자주 나갔다. 걷고 공기를 마시며 나무를 눈에 담고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을 세어보고 또 서로를 안아주기도 하면서.





이 주일. 그러다 한 달. 하루 한 번 산책에 적응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정신과에 가지 않게 되었다. 약을 그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가, 조심스레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꽤 괜찮았다. 그즈음 어느새 솜이도 나처럼 괜찮아 보였다. 꼬리를 번쩍 들고 신난다는 표정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함께 걷고, 여기저기 냄새도 맡아보다가 나도 한 번 올려다 봐주는 솜이. 나도 솜이도 그렇게 여름 내내 함께 걸었다. 한결 건강해진 정신으로 즐겁게.


요즘도 매일 솜이와 함께 나간다. 내가 아니면 밖에 나갈 수 없는 솜이를 위해 시작한 산책이 나에게 이렇게 커다란 도움이 될 줄이야. 우울증이라는 병은 내 눈을 가리고 슬금슬금 달라붙어버리는데, 솜이를 데리고 산책 나갈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 없어졌다 보다. 이제는 우울증 대신 강아지 솜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솜이 한평생 내 옆에서 살아가는 동안 편안한 마음이길 바란다. 나도 계속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산책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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