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대 사람으로 부대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소통의 도구는 당연히 '언어'입니다. 이 언어라는 것은 현실을 담는 그릇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우리는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예측'하고, '판단'합니다. 즉, 같은 언어라도 그 언어가 의미하는 것은 천차만별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봐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그릇을 살펴보면 전부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을 겁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파트너와 대화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분명히 A라는 의도를 가지고 B라는 말을 했는데 상대방은 나의 의도를 C로 받아들이고, 나의 말을 D로 해석합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많은 커플들이 싸우고, 끝내 이별하는 것은 이런 소통의 오류 탓이 큽니다. 감정이 안정되어 있다면 어떻게든 대화하며 오해를 풀고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우리의 감정이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피어나는 것입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다 기울면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감정은 '자연스럽게' 피어납니다. 감정은 마치 사고처럼 갑자기 휘몰아쳤다가 별안간에 사라집니다. 물론 어떤 감정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지속되기도 합니다. 감정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피어났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로 통제되기 어렵습니다. 감정이 대체로 좋을 때는 당연히 파트너와의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감정이 좋지 않을 때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감정이 좋지 않을 때는 현실을 담아내는 언어라는 그릇에 좋지 않은 내용물을 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감정 고백'입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났을 때 빠르게 파트너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파트너는 조금 더 너른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정 고백을 위해서는 먼저 나의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 관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살아가면, 즉 에너지가 외부로만 향하고 있으면 나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볼 수가 없습니다. 에너지를 내부로 돌려 나의 마음 상태를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이 습관이 잘 자리 잡으면 이른 아침부터 하루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이 곧 현실을 창조해 내기 때문입니다.
Magda와 저는 서로에게 감정을 자주 고백합니다.
"오늘은 내가 좀 예민하네."
"오늘은 이상하게 슬퍼."
"오늘은 뭔가 마음이 무겁고 지치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기꺼이 가슴을 내어줍니다. 우리는 감정이 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감정을 담아내는 언어 또한 일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칼이면 다른 한 사람은 칼집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칼과 칼은 결국 전쟁뿐이고, 거기에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습니다.
아침에 서로에게 '잘 잤어?'라고 묻는 부부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아침이면 습관처럼 서로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잘 자는 것이 하루의 감정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상대방의 수면질을 파악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면 관계는 더욱더 돈독해집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감정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트너에게 감정을 고백해야 합니다.
감정 고백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두 사람 모두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중요성을 알고 나면 용기를 조금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취약성을 들어내는 걸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파트너에게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내보이는 데 어려움이 없고, 상대방이 그 약한 부분에 연고를 발라주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할 때에 부부 관계는 어그러지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