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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Dec 20. 2024

걸어가 보지 않은 길


강사들이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감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모르지?

이걸 어떻게 까먹지?

이걸 왜 이해 못 하지?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불성실하지?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지?


이와 같은 감정과 생각은 하나도 빠짐없이 에고(경험으로서 축적된 나)의 것입니다. '사실(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에고의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고, 까먹을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멍청하다 것, 아이들이 불성실하다는 것, 아이들이 예의가 없다는 것 모두 우리의 '생각'일 뿐, 그것이 사실은 아닙니다. 


문제는 강사가 이런 감정을 품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은 강사가 사용하는 언어나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강사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아이들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습니다. 에너지가 막히고, 배움의 속도는 당연히 더뎌집니다.


저 또한 그간 알게 모르게 많은 아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이런 감정이나 생각을 품고 있는 나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꽤 놀라운 느낌인데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절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럼 기존에는 어땠느냐? 이런 생각과 '나'를 완전히 동일시하여 생각과 나 사이에 어떠한 틈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틈(머뭇거림)이 없으면 인간은 입력값대로만 행동하는 기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요즘에 저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알아차려 저의 의식과 행동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틈이 자꾸만 알아차려집니다. 저는 기계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머뭇거립니다. 세상일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니 세상일 자체가 변화합니다. 나의 의식이 곧 세계라는 것이 이런 말이구나 싶습니다. 저의 마음 상태는 전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편안한 상태이며, 이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의 상처는 아물고, 에너지는 다시 열려 배움에 속도가 붙습니다. 


아이들에게 화내고 짜증 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사랑만 주며 가르쳤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이라 그렇습니다.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가지고 걷는 길에는 늘 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쉬워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가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어렵기 때문에 찾는 이가 적다." 마태복음 7:13-14


저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좁고 길더라도 저는 이 길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무언가가 아니라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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