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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5 –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by 정현태

시곗바늘은 열심히 내달렸고 어느새 1차 기형아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병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고, 병원에 가는 길이 산책로로 잘 가꾸어져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주로 걸어 다녔습니다. 이 날도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언 땅이 녹고 그 안에서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해 세상은 약동하는 기운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멋진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1차 기형아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하늘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검사 결과는 며칠 뒤에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Magda와 저는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왔습니다.


며칠 뒤 병원으로부터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긴 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고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습니다. 또 며칠 뒤 정기검진이 있어 다시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1차와 2차 기형아 검사에서 확인하는 항목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아이가 70% 확률로 정상이며, 2차 기형아 검사 결과까지 정상이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2차 기형아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보나 마나 정상으로 나올 것이 뻔했습니다. 2차 검사에 대한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저는 부모님께 하늘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크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삶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했고, 이 완벽한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20240306_112913.jpg 병원에 가던 날


다음 정기검진일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았고, 우리는 2차 기형아 검사에 대한 결과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사 결과지를 확인하시더니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늘이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하셨습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저는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시길,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며 보통 다음 검사인 니프티 검사에서 대부분 정상으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놀란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니프티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이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늘이가 장애가 있든 없든 어차피 나아서 키울 생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니프티 검사를 받아봐야 어차피 정상이 나올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상의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리곤 상담실을 빠져나왔습니다. 한국말을 몰랐지만 Magda는 의사 선생님과 저와의 대화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실에서 나오자마자 Magda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고, 저는 '아마도'라고 답했습니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늘 행복에 겨웠는데 이 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Magda에게 이 상황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Magda는 남은 임신 기간 동안 불안함에 떠느니 확실한 결과를 알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Magda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저는 병원에 전화해 니프티 검사 일정을 잡았습니다. 일정을 잡고 난 뒤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기형아 검사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상에는 과거에 우리와 같은 고민과 걱정을 가졌던 부부들의 사례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정보를 찾는 그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커플이 같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것은 빈번한 일인 듯했습니다. 그리고 니프티 검사까지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정상 판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가량 인터넷에서 기형아 검사와 관련된 정보를 취합한 결과, 저는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일 확률은 아직도 굉장히 희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풀이 죽어 앉아있는 Magda에게 가서 제가 내린 결론을 전하며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고 말했습니다. Magda도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했습니다.


이때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니프티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최종적으로 양수 검사라는 것을 받게 되고, 양수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오면 사실상 그 아기는 다운증후군인 것이 확실해집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양수 검사를 통해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의 커플이 중절수술을 결정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절수술로 아기들을 떠나보낸 수많은 사례를 읽어보며 저는 경악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왜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것인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아기를 원하지 않거나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중절수술을 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부모가 중절수술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이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아직도 논쟁 중에 있지만 저는 뱃속의 아기가 엄마의 건강을 극도로 위협하는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중절수술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혹시나 Magda 또한 다른 여자들처럼 중절수술을 고민하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 Magda에게 물어봤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은 Magda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길 바란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우리는 이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법으로 중절수술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아주 심각한 상황에서 또다시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안도했습니다.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Magda와 함께라면 겁낼 것이 없었습니다.


니프티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2차 기형아 검사 결과를 받아 든 날에는 조금 슬펐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다시 예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상담실에서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께서는 니프티 검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고, 그다음 검사인 양수 검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검사 결과는 10일에서 2주 정도 후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상담실을 나왔습니다. 상담실에서 나온 뒤 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Magda는 니프티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마친 우리는 병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우리는 통유리로 된 한쪽 벽면에 앉았고, 따사로운 햇살이 통유리를 통과해 카페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일말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우리는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완벽한 삶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통유리 벽 너머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다운증후군 아이 두 명과 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지나갔습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중절수술로 세상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Magda와 저는 두 눈이 똥그래져 서로를 바라보며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두 여성분께는 진심으로 죄송하지만 간악한 인간의 몸으로서 우리는 분명 어떤 불길함을 느꼈습니다.


니프티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원에서 회의를 하던 중 책상 위에 놓여있던 핸드폰 화면이 갑자기 켜졌습니다. 044(세종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전화였습니다. 병원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빠져나와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간호사로 추정되는 한 여성분이 니프티 검사 결과가 나왔고 상담을 위해 내원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물었지만 그 여성분께서는 정확한 결과는 상담을 통해 들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누구나 직감으로 알게 됩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저는 Magda에게 이 사실을 최대한 담담하게 전했습니다. Magda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운증후군의 원인은 아직도 알려진 바가 없고, 알려진 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음 여리고 착한 Magda는 평범하고 건강한 아이를 잉태하지 못해 자책한 것입니다. 우리 둘은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갈 차례였습니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검사 결과를 전하셨고, 결과는 우리가 이미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운증후군 확진을 위해서 다음 검사인 양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양수 검사는 그 검사 방식이 뱃속의 아기에게 만에 하나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럼 낳으시는 거죠?'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들렸습니다. 이 의사 선생님의 손에 이미 수많은 생명이 찰나의 삶을 마감했을 터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미웠습니다. '낳지 않는다면 이제 어떤 선택지가 남아있죠?'하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무 의미 없는 논쟁이었기에 참았습니다. 저는 그저 단호하게 '네.'라고 답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사랑으로 키울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조금 다르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저는 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니프티 검사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고 싶었습니다. 니프티 검사는 임산부의 혈액에 존재하는 태아의 DNA를 분석하여 태아의 염색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도는 99퍼센트에 달합니다. 저는 남은 1퍼센트의 가능성을 찾아 인터넷 망망대해를 헤맸습니다. 하지만 그 1퍼센트의 존재는 마치 전설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찾고 싶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다운증후군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한 글에 따르면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자신들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대체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정보의 사실관계를 떠나 저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4월의 또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고, 하늘이는 20주 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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