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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7 – 지구별에 등장한 정하늘

by 정현태

병원에 도착하여 입원 수속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배정받은 병실로 들어왔고 Magda는 한 간호사가 건넨 입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입원복을 입은 Magda를 보니 꿈처럼 비현실적이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들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들이 낯설었습니다. 내일이면 Magda의 뱃속에 있는 하늘이가 세상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이 되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고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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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만나기 하루 전 날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한 간호사분께서 병실에 들어오시더니 수술 일정이 오전 9시 30분으로 정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고요한 병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예정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병원 직원분들의 안내를 받아 수술 대기실로 이동했습니다. 수술 대기실에서 Magda의 순서를 기다리며 우리는 사진도 찍고 장난도 쳤습니다. 긴장을 풀기 위함이었던 것인지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것인지 이제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 간호사가 다가와 보호자인 제가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간호사는 또한 수술 당사자인 Magda가 수술 간에 인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들은 알려주었고, 저는 최대한 잘 통역해서 Magda에게 전달했습니다. Magda는 잘 이해했는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은 30분 안에 끝날 예정이었고, 수술 이후에 Magda는 회복실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저와 다시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수술대기실에서 몇 분이 흘렀습니다. 또 다른 간호사가 와서는 이제 수술실로 이동한다고 말했습니다. Magda와 저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서로에게 사랑을 전했습니다. 잠시 후 Magda가 수술실 문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수술실로 보냈습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보호자 대기실에 우두커니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Magda와 하늘이를 기다렸습니다. Magda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30분 정도 지났을까요.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로 보이는 네 명의 사람이 이동식 인큐베이터를 끌고 나왔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이들 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보호자분 어디 계신가요?” 그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한걸음에 달려가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고 있는 간호사분들과 속도를 맞추어 걸었습니다. 제가 보호자임을 알리자 한 간호사분께서 바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아기가 스스로 호흡을 못해서 위급한 상황입니다. 당분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될 겁니다.” 말씀 중에도 인큐베이터는 계속 이동 중이었고, 저는 간호사분들과 보폭을 맞춰 걸으며 시종 인큐베이터 안을 살폈습니다. 시야에 들어온 하늘이는 가냘픈 핏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고개를 움직여 하늘이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두 눈에 담아보고자 애썼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거의 도착했는지 한 간호사가 여기에서부터는 따라올 수 없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잠시 후 자동문이 우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하늘이는 저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다시 혼자 남겨졌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늘이와 관련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Magda를 기다릴 차례였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기를, 다시 건강하게 Magda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Magda는 두 시간쯤 지나 입원실로 돌아왔습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던 Magda의 배는 이제 제법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저를 만난 Magda는 희미한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했습니다. "하늘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어." Magda는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정신은 혼미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얼마 후 하늘이 담당 소아과 교수님께서 병실에 오셔서는 하늘이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소아과 교수님께서는 제왕절개술 이후에 하늘이에게 필요한 수술이 있을까 봐 수술실에 부인과팀과 소아과팀이 모두 들어가 준비했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예상했던 것만큼 하늘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아 수술은 필요가 없었고, 필요한 시술만 하여 상황을 지켜보는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소아과 교수님께서는 하늘이의 다운증후군 여부는 추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할 예정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는 병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병실에는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다음 날이 밝았습니다. 약 기운 때문인지 Magda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고 몸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걷는 연습을 해야 빠르게 회복된다는 담당 교수님의 말씀에 Magda는 저의 부축을 받아 병상에서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1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걷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 보였습니다. Magda를 잠시 병실에 남겨두고 저는 하늘이를 보기 위해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이 날은 목요일이었고, 30분 동안 하늘이를 볼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기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박웃음을 한 사람, 슬픔은 머금은 사람, 무표정의 사람 등 각자가 자신의 사연에 맞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일제히 중환자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최첨단 의료설비로 가득 차 있어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한 실험실처럼 보였습니다. 구조가 제법 복잡했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면회가 익숙한지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간호사에게 하늘이 아빠라고 소개한 뒤에 하늘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하늘이와 만났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하늘이가 안대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이었고,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여러 신체적 특성으로 미루어보아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것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미 하늘이의 삶을 긍정하기로 마음을 먹은 지 오래라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작은 몸에 온갖 의료 장치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하늘이가 그저 가여웠을 뿐이었습니다. 한 간호사가 다가와 하늘이를 만져봐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그 작은 몸이 툭하고 부서져 버릴까 봐 도저히 만질 수 없었습니다. 면회 시간은 30분이었지만 저는 10분 정도 하늘이 곁을 지키다가 혼자 있는 Magda가 걱정되어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수술 3일째 되는 날 Magda는 마약성 진통제를 끊어내고 빠르게 기운을 되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Magda의 혈색은 전날과 확연히 달랐고 진통제 때문에 흐리멍덩했던 눈빛도 다시금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인과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진통제를 적게 사용하는 환자는 처음 본다며 놀라셨습니다. 이제 Magda는 제법 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틈나는 대로 걸으려고 함으로써 빠른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수술 4일째 되는 날은 토요일이었고, 토요일은 신생아 면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첫 면회 때는 혼자라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Magda와 함께 갈 수 있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되자 우리는 하늘이를 만나러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도착하여 하늘이를 처음으로 마주한 Magda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Magda는 벌게진 눈으로 하늘이의 모습을 오랜 시간 구석구석 살폈습니다. 하늘이가 여전히 안대를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하늘이는 아무런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삶을 연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소아과 교수님이 오셔서 하늘이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설명 중에 조금 감정이 격해지셨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슬퍼해주시는 교수님의 마음이 참 따뜻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진인사대천명(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이라는 중국의 오랜 한자성어를 인용하시며 지금은 그저 하늘의 명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20240525_102922.jpg 지구별에 등장한 하늘이


Magda는 수술 5일째 되는 날인 일요일에 건강하게 퇴원했습니다. 외관상 아무리 건강해 보인다고 한들 출산 직후 여자의 몸은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어떤 관리를 받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건강이 좌지우지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Magda에게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라고 했지만 Magda는 절대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럼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어주실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한사코 싫다고 했습니다. 과연 삼바의 나라에서 온 강인한 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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