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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8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by 정현태

Magda와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나날을 살아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 면회는 매주 화, 목, 토요일이었습니다. 이날만 되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두고 하늘이를 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초반에는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병원에 도착하면 둘 다 화장실부터 찾기 바빴습니다. 우리는 늘 웃으며 병원으로 향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의 얼굴을 포함하여 온몸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폐에 자꾸만 물이 차고 있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호흡을 잘 못 하니 심장에 무리가 가고, 그것이 고혈압을 유발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교수님은 하늘이의 폐에 관을 삽입하여 체액을 빼내는 수술을 오른쪽, 왼쪽에 각각 한 번씩 진행하셨습니다. 그래도 몹쓸 체액은 다시 차올랐습니다.


하루는 교수님께 하늘이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냐고 여쭈었습니다. 교수님은 아주 긴 싸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희가 어디까지 치료하기를 바라시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제게는 '할 수 있는 것이 마땅히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여기서 그만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하늘이의 치료는 즉각 중단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한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늘이의 치료를 계속할지 중단할지를 두고 Magda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하늘이가 현재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하늘이가 통증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적고, 느끼고 있더라도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저희는 안도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Magda와 저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매번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병원으로 향했지만 돌아오는 건 슬픈 소식뿐이었습니다. 상황이 가장 안 좋았을 때는 교수님으로부터 하늘이의 생존 가능성이 5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숫자는 너무나도 선명했고 또한 잔인했습니다. 저는 항상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Magda에게 전달하는 편이었데, 이날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망설여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엄마가 모든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솔직히 이야기했고, Magda는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날씨가 후텁지근해지기 시작하는 6월 중순의 어느 날, 교수님은 하늘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조심스럽게 전했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사실이 마침내 확실시되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온 탓에 별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6월 말에도 저희는 계속 병원을 찾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캥거루 캐어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캥거루 캐어는 아이를 부모의 가슴팍에 올려 피부와 피부를 맞대고 교감하는 것입니다. 하늘이가 드디어 좋아지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하늘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건가? 저희는 이 소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쨌든 Magda는 처음으로 하늘이를 가슴에 안아봤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저도 그런 Magda를 보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저도 하늘이를 안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하늘이가 있는 인큐베이터 주변으로 간이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한 간호사님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들어가 지정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간호사님이 인큐베이터를 열어 능숙하게 하늘이를 꺼낸 뒤에 저에게 건넸습니다. 저는 살짝만 힘을 줘도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그저 본능에 따라 어설프게 팔을 벌렸고, 간호사님은 하늘이를 제 품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셨습니다. 간호사님은 한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시며 화면 속 숫자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거든 호출해 달라고 말씀하시곤 사라지셨습니다. 중환자실은 고요했고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기계음만이 적막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하늘이는 제 가슴팍에 엎드려 누워 들릴 듯 말 듯 미세한 숨을 내쉬고 있었고, 맞닿은 피부는 막 쪄낸 호빵처럼 말캉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맡은 하늘이의 살냄새가 코 끝을 간질이는 듯합니다. 정말이지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1719661792050.jpg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긴 하늘이


7월 초에 하늘이는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도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며 하늘이가 집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고 하셨습니다. 생존율 5퍼센트를 논한 것이 불과 3주 전이라 Magda와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튼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늘이의 몸에서 부기가 빠져 보기 좋았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몸에 달고 있던 것들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7월 13일 드디어 하늘이가 인공호흡기를 뗐습니다. 하늘이가 태어난 지 5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이의 귀여운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나지막하게 들리는 하늘이의 숨소리는 천사의 노래 같았습니다. 저는 하늘이의 코에 제 귀를 바짝 갔다 대고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7월 중순이 지나며 하늘이의 퇴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하늘이는 여전히 위루관을 통해 분유를 먹고 있었습니다.(참고로 위루관은 입이나 코에서부터 위장까지 연결되어 있는 가느다란 관입니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하늘이가 위루관 없이 스스로 젖병을 빨아서 분유를 먹을 수 있으면 퇴원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긴 터널 끝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제 여름휴가가 8월 1일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Magda와 저는 이 일정에 맞게 하늘이가 집에 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담당 교수님께 그렇게 부탁드리기도 했지만 교수님께서는 너무 이른 것 같다며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퇴원을 위해서는 하늘이가 65ml 정도의 분유를 자기 입으로 먹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하늘이를 돌보시는 간호사님들께서는 하늘이가 자기 입으로 먹는 우유의 양이 10, 15, 20ml로 천천히 증가하고 있다고 하셨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65ml를 다 먹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7월 말, 담당 교수님은 아무렴 신생아를 부모가 돌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냐며 위루관을 달고 퇴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셨습니다. 그래도 사전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부모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일반 병동에서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연습하고 퇴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늘이는 76일의 시간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8월 6일에 일반 병동에 입성했습니다.


20240806_175846.jpg 일반 병동에 입성한 하늘이를 돌보는 우리


Magda와 저는 한때 생존율이 5퍼센트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아팠던 하늘이를 이제는 우리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겁을 먹었습니다. 일반 병동에 입성한 우리는 한 간호사님으로부터 위루관을 통해 수유하는 법과, 투약 시간 등 하늘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여러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하늘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서 정성스럽게 간호했습니다. 둘이서 정신없이 하늘이를 돌보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습니다. 하늘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료 장비가 알아서 경고음을 울려줄 테지만, 우리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거의 뜬 눈으로 첫째 날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Magda와 저는 다크 서클이 콧구멍까지 내려온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Magda와 저는 더 이상 하늘이가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데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계속 병원에 있기에는 하늘이가 너무나도 건강했습니다. 이른 아침 회진을 도시는 담당 교수님께 간청했습니다. "교수님, 하늘이 퇴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희가 잘 돌보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러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늘이는 8월 7일 늦은 오후에 병원을 떠나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한 가족으로서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40807_175523.jpg 드디어 퇴원해 집으로 온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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