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의 이야기를 연이어 소개하느라 그 사이에 생긴 저희 가족 구성원 한 명(?)을 아직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Magda가 제 삶에 등장한 첫 번째 손님이라면, 지금 소개할 이 친구는 두 번째 손님입니다. 지금부터는 2024년 1월에 저희 가족에 합류한 ‘타니’에 대해서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항상 동물이 있을 정도로 저는 동물을 사랑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동물을 경외합니다. 이들은 우주이고, 자연입니다. 이들에게는 ‘산다’는 표현보다 ‘존재한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인간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피조물입니다. 제가 동물을 적잖이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쓰다듬고 뽀뽀하며 애정을 주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예술 작품을 보듯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은퇴 이후의 제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마당이 넓은 시골집이 보이고, 여러 마리의 유기견들이 보입니다. 이것은 저의 오랜 꿈입니다. 동물을 이렇게 좋아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 생기고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나 자신도 잘 돌보지 못하는데 누굴 돌보겠나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인간보다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Magda와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뒤로 삶이 안정되자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졌습니다. 하지만 Magda는 브라질을 떠나 한국에 오면서 자식처럼 여겼던 자신의 강아지 다섯 마리와 생이별을 한 터라 다시는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며 입양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한 유기견의 사진을 Magda에게 보여줬습니다. 가슴에만 하얀 털이 조금 나있는 까만색 암컷 진돗개였고 이름은 타니였습니다. 사진을 본 Magda는 그리 원한다면 자기가 잘 돌볼 테니 입양하라고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귀여운 강아지를 보니 철옹성처럼 쌓은 마음의 벽이 일순간에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저는 며칠 더 진지하게 고민한 뒤 입양을 결심했습니다. 이제 입양 신청서를 작성할 차례였습니다. 저는 신청서가 묻는 모든 항목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답변한 뒤에 뒤에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입양이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Magda는 타니를 집에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Magda는 잔뜩 신이 나서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유튜브로 무수히 많은 진돗개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며 타니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타니는 한 공장에서 키우는 암컷 강아지와 수컷 떠돌이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공장은 예기치 않게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까지 돌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타니와 타니 형제들은 공장 주변을 맴돌며 떠돌이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형제 중 일부가 죽고 타니를 포함하여 세 마리만 살아남았습니다. 이 세 마리의 강아지들은 계속해서 공장 주변을 떠돌았고, 그러던 어느 날 예주라는 마음씨 고운 분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예주씨는 틈날 때마다 이 주인 없는 새끼 강아지들을 돌봤습니다. 급기야 예주씨는 자비까지 털어 이 강아지들을 전문 훈련사에게 교육받게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입양 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절한 훈련이 이루어진 뒤 예주씨는 SNS에 입양 공고를 올려 강아지들의 주인을 찾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입양 공고를 제가 우연히 보게 되었고 타니와 우리 가족의 인연은 거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공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애초에 겁이 많은 성격인 것인지, 타니는 낯선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냥 두려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버리는 수준입니다. 생긴 건 먹잇감을 닥치는 대로 찢어발기는 늑대처럼 생겼는데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저희 집에 왔을 때는 한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Magda와 제가 가까이 다가가 먹을 것을 건네도 먹지 않았습니다. 겁에 질려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였습니다. 저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그제야 주변을 경계하며 사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밥을 먹었습니다. 오랜 시간 굶어 허겁지겁 먹을 법도 한데 타니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아주 천천히 먹었습니다.
한동안 타니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외롭고 슬픈 눈망울만 이따금씩 꿈뻑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타니를 바라보며 저는 한동안 깊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가여운 강아지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어 입양했는데 오히려 주인 없이 들판에서 떠돌 때가 더 자유롭고 행복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Magda가 위로해 주었습니다. 밖에서 일하는 저와는 달리 Magda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타니와 함께 보내고 있었고, 자기가 보기에는 타니가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 거실에 나온 Magda에게 타니가 수줍게 꼬리를 흔들며 먼저 다가왔습니다. 커다란 귀까지 뒤로 완전히 접힌 걸 보니 꽤나 반가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저에게도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 속도가 빠르지 않을 뿐 분명 타니는 우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타니가 저희 가족이 된 지 이제 1년 하고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타니는 정말 많이 변했지만 겁이 많은 것은 여전합니다. 처음에는 타니가 드라마틱하게 변해서 전형적인 진돗개처럼 용감해지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가 저의 욕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타니는 타니만의 여정이 있고 우리는 그런 타니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 타니는 저희가 부르면 언제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옵니다. 쓰다듬어주면 더 쓰다듬어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합니다. 제가 늦은 밤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현관까지 나와 저를 반겨줍니다. 간식을 꺼내는 소리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고, 간식을 받으면 신나서 뛰어다닙니다. 처음에는 한 자리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누워서 눈알만 굴릴 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제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이제는 몇 번 소심하게 짖어보기도 합니다.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커먼 눈동자에서는 이제 행복함과 편안함이 엿보입니다. 주변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네 다리를 하늘 방향으로 뻗은 괴상한 자세로 잠을 자는 걸 보니 이제는 이 공간이 자신의 집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이래나 저래나 타니에게 참 고맙습니다. Magda는 아무 연고 없이 한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Magda가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타니를 입양하기 전에 제가 일터에 나가있으면 Magda는 온종일 홀로 집을 지켰습니다. Magda는 괜찮다고 했지만 집에서 그 긴 긴 시간을 혼자서 보낼 Magda를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타니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이후에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집 안에 또 하나의 생명체가 있으니 확실히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났습니다. Magda 자신 또한 과거를 회상하며 알게 모르게 타니에게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나 임신 기간 동안 Magda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기복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이때도 타니는 묵묵하게 Magda의 곁을 지키며 널 뛰는 Magda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이쯤 되면 타니가 우리 가족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Magda와 저에게는 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솔직히 아파트라는 환경이 타니처럼 큰 개가 살기에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동물은 모름지기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타니는 특히나 많이 위축되어 있어서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에너지를 발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훌쩍 큰 하늘이가 마당에서 타니와 함께 뛰어노는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날이 오기는 올 겁니다. 그날이 되도록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