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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1 – 빛과 소금이 되고 싶습니다

by 정현태

Magda를 처음 알게 된 것이 2022년 11월 28일,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5년 7월 29일입니다. 약 3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인데 이토록 많은 일들이 생길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한 한국 남자가 지구 반대편에 사는 브라질 여자를 만나 결혼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까지의 가능성도 희박한데, 이 커플 사이에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나는 건 또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가능한 일일까요?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제 삶에 불어닥친 이 기이한 우연들에 저는 가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늘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멋들어지게 파도를 타는 제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제법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 과정이 꽤나 험난했기에 드디어 좋은 때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은 안정적이었고 얼굴도 예쁜데 마음까지 고운 완벽한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습니다. 가족이 안이고, 사업이 밖이라면 제 삶은 안과 밖 모두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저는 멋지게 파도를 타다가 고꾸라졌습니다. 저를 좋게 보시고 좋은 제안을 해주신 분이 있어 고민 끝에 사업을 조금 확장했습니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시작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벌이는 늘지 않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만 가중되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일이란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것인데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니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고민 없이 관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Magda가 임신한 뒤로는 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습니다. 하늘이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온 세상이 캄캄한 지옥 같았습니다. 파도는 허우적거리는 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더 거세게 몰려와 저를 집어삼켰습니다.


남자답게 이 고난을 감내했어야 했는데 저는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줄곧 생각에 잠겼고, 입꼬리가 축 쳐진 우울한 표정으로 많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Magda는 제 감정을 귀신처럼 알아차리는 사람입니다. Magda는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고 저만큼이나 괴로워했습니다. 이맘때쯤 Magda가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사실은 저 때문입니다. Magda는 자기가 유튜버로 성공해서 제가 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이 하늘이가 아픈 몸으로 갑자기 태어났습니다. 우리 삶은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갈대처럼 그 주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Magda와 제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은 다 좋은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게 되지만 실상은 다 좋은 것입니다.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감사한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하늘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건강하게 퇴원해 저희 품에 안겼습니다. 망망대해에서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던 저는 간신히 보드를 찾아 두 팔을 보드 위에 얹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일터에 나갈 때는 패잔병의 어깨를 하고 갔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승리의 전리품을 가득 챙긴 전사의 어깨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이를 볼 생각에 설렜던 것입니다. 하늘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늘 어떤 순수한 사랑의 에너지가 있어 저는 그 단물을 빨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이 시기에 제가 가르치는 학생수가 줄었고 이에 따라 가정을 꾸리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커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습니다. 수업이 줄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죽어있던 삶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큰 상황은 여전히 조금 찜찜했지만 삶이 주는 커다란 만족감에 그 찜찜함은 쉬이 가려지곤 했습니다. 비우면 다시 채워지고 다 차면 다시 비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비우다 보면 또 언젠가는 채워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와중에 Magda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구독자 중 95% 이상이 브라질 국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제가 과거에 쓴 글을 AI를 이용해 포르투갈어로 번역한 뒤에 Magda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습니다. 긴 글이 소멸되고 있는 시대에, 그것도 영상 위주의 플랫폼에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의심스러웠습니다. 놀랍게도 제법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꼭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댓글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게시물을 올렸고 그때마다 구독자님들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유튜브 어플을 켜 새로운 댓글이 있나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댓글 숫자가 5에서 6으로 늘면 저는 선물 포장지를 뜯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댓글 버튼을 눌러 새로운 댓글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구독자분께서 책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또 어느 날 다른 구독자분께서도 같은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몇몇 분들이 제 글이 책으로 출판되길 원하셨고 잠시 미래를 상상해 본 저는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을 쓰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있었는데 결국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그래도 조각만 한 꿈이라고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때가 되었을 때 나 또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향한 강렬한 열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책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은 뒤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원고가 어느 정도 쌓이면 Magda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해 한결같이 저를 응원해 주시는 구독자분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구독자분들이 매번 남겨주시는 기분 좋은 댓글들을 장작 삼아 저는 그 어느때보다 글쓰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원고가 200페이지를 넘어섰을 때 즈음 슬럼프가 왔습니다. 한 문장을 쓰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곤 했습니다. 점점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쓰기가 더 이상 즐겁지 않고 ‘하기 싫은데 해야 할 일’처럼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깨달음이 왔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음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성을 읽고 목표 자체를 욕망하게 됩니다. 간악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경험했음에도 저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언젠가 적절한 때가 되면 다시 신명 나게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습니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원고를 열어 감을 되찾을 심산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속도로 훑었습니다. 제법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쓴 1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랑의 철학을 다룬 2편은 조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논의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내용들이 빠져있어 애써 적은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가 닿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적절한 목차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은 터라 구성 또한 엉망이었습니다. 저는 메모지를 펴 목차부터 다시 구성했습니다. 대강의 목차를 세우고 보니 글을 계속 쓰려면 원고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기존 원고를 손보지 않고 대충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들기는 했습니다. 책의 질보다는 출판에 의의를 두고 싶은 헛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출판되면 평생을 불만족과 부끄러움 속에서 살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제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원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시작했습니다. 목차에 따라 필요한 글이 있다면 새롭게 쓰기도 하고, 기존 원고에서 필요한 부분들이 있으면 그대로 가져와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출근하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글 쓰는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하루 종일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어디서 읽었는데, 사람이 열정을 가졌을 때는 열정 그 자체가 되기에 자신이 열정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식의 주체(나)와 대상(열정)이 달라야 그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데 주체와 대상이 같아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요즘 이러한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눈치 채신 분이 있겠지만 실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저를 여기까지 내몬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댓글도, 그리고 쉼 없이 움직이며 키보드를 누르는 제 손도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입니다. 열정이란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다 내맡깁니다. 위대한 그 큰 뜻에 전부 다 내맡깁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세상에 한 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뿐입니다.


KakaoTalk_20250902_144452538.jpg 요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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