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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사랑합니다.

by 정현태

계절을 사랑합니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완벽한 균형을 찾아가는 계절을, 저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삶이 계절을 닮아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실 그럴 겁니다. 인간이 어찌 자연을 떠나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멈춰 있는 듯 보여도,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계절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지금 이 삶이 어느 계절에 놓여 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삶을 계절에 비유해 보면, 마음이 한결 고요해집니다. 떠난 것은 다시 돌아오고, 진 것은 다시 핀다니 안심입니다. 그러니까 계절은 직선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것은 사실 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따로 흐르지 않습니다. 사계절 모두가 한 폭의 그림처럼 동시에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미 수없이 읽어,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소설책 같습니다. 책장은 계속 넘어가지만, 모든 이야기는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삶이 사계절처럼 순환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순간, 기대도 걱정도 사라집니다. 기대와 걱정은 언제나 미래의 것입니다. 그런 기대와 걱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옴을 의미합니다. 현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계절은 만물에게 이릅니다. "죽어라." 인간이라면 몸서리칠 말이지만, 만물은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기꺼이 죽음을 준비합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언어일 뿐,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끝은 곧 시작이며, 시작은 곧 끝이라는 사실을 만물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까? 모른다 해도 괜찮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단 하나, 우리 삶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 속을 걷는 듯한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환희에 젖어 그 기쁨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면, 아쉽지만 착각입니다. 그 기쁨 또한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러니 우리, 시작과 끝에 연연하지 말고, 만물처럼 그저 존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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