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목 Mar 11. 2024

자식은 부모의 작품이다. 정말?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손웅정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가 조금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잠이 더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와이프는 나보다 한, 두 시간은 더 자기 때문에 옆에서 조용히 밀리의 서재를 켰다. 읽을 만한 책이 없나 뒤적거리다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선생님의 에세이를 펼쳤다. 


손흥민 선수가 유명세를 타면서 손웅정 선생님 또한 매스컴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몇 번의 영상으로 선생님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선생님의 성정이나 철학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인지하고 있었던 것보다 그 깊이가 훨씬 더 어마어마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손흥민 선수가 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진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대와 강압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경향 속에서 손흥민 선수의 이 말은 자칫 안 좋은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보니 축구 선수가 되길 희망한 것은 손흥민 선수고 손웅정 선생님은 아들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까지 갈아 넣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가 손웅정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오늘날의 손흥민 선수로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이들의 삶은 실로 부모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의 존재에서 유의 존재로 만든 것도 부모이지만 한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을 그 부모가 온전히 책임지고 있을 때에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새 생명이 모태에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이 생명은 부모에게 전적인 의존을 시작한다. 태아는 원치 않은 환경에서, 원치 않은 소리를 들으며, 원치 않는 영양소를 받아먹으며 성장한다. 모체에서 분리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살아가는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지, 아기는 여전히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존재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3살까지의 기간이 한 사람의 인지 발전에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많은 부분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면 이 사실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손흥민 선수의 친형인 손흥윤 씨도 같은 시기에 손웅정 선생님으로부터 축구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존경을 받는 손흥민 선수와 달리 손흥윤 씨는 축구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고, 욕설 등으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이 책에서 손웅정 선생님도 술회하지만 흥윤 씨는 자신의 성정을, 흥민 선수는 아내의 성정을 닮았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능력치와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듯하다. 누나와 나만 봐도 너무나도 다른 양상으로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손웅정 선생님도 선생님의 부모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라 손흥민 선수의 성공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삶은 이토록 치명적일 정도로 인과율에 의해 얽혀 있어 무언가를 단순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손흥민 선수의 말과는 다르게 손웅정 선생님은 아들의 성공을 오로지 아들의 덕으로 치켜세우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신다.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울 수 있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고.

부자의 주장이 어떻든 간에 흥윤 씨와 흥민 선수의 사례를 보면 결국 모든 것은 관계의 꼬임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고의 자식 양육법은 없다. 자식들의 타고난 꼴을 존중하여 그에 맞는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이 최고의 양육법일 것이다. 나는 가끔 아찔한 상상을 하곤 한다. 내가 대한한국의 전형적인 엄마아빠 아래에서 성장했더라면 어땠을까. 사람 구실은 하면서 살고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참 자유롭게 키우셨다. 그래도 사람 구실은 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예의 없는 행동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교육하셨다. 자유로운 가운데 어떠한 틀은 명확하게 있었으니 나는 제주도 평야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말처럼 자란 것이다. 부모님이 내가 허락한 자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한량이나 불량배 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손 씨 부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손웅정 선생님 본인의 가치와 철학들도 많이 녹아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또 허투루 읽는 일이 없으셔서 내공이 엄청나시다.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아 쉼 없이 메모하며 즐겁게 책을 읽었다. 어제는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의 중요한 경기가 있었다.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는 편이 아닌데 손흥민 선수의 경기는 되도록 챙겨보게 된다. 어제는 특히나 중요한 경기가 있었는데 책을 읽은 뒤라 훨씬 더 즐겁게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손흥민 선수는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대 0 승리를 이끌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좋은 하루였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이른 아침 손웅정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해 손흥민 선수의 골로 마무리한 즐거운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관련 책에서 인생(人生)의 지혜를 발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