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 7년 전에 만난 두 아이
2017년 정월 초순 일이었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연하장을 대신한 가족사진 한 장이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서 날아왔다. 4 x 6 인치 컬러 사진 속에서 어린 준이는 엄마 무릎 위에 눈꽃송이처럼 살포시 앉아 있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일요일 교회에 온 준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준이 엄마가 자신의 구순 할머니를 뵈러 한국에 나오시게 되자, 13개월이 된 준이도 엄마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날아왔었다.
준이는 낯가림도 하지 않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이유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는 식탁 옆에서 이리 저기 걸어 다니는 준이에게 다가가 사과 한 조각을 손에 쥐어 주었다. 고사리 같은 오른손에 사과를 받아 든 준이는 자기 입으로 가져가 은방울꽃 같이 예쁘고 하얀 이로 한 입 베어 먹고는 이내 조그마한 팔을 뻗어 나에게 먹으라고 남은 사과 조각을 내밀었다. 일순간 나는 놀랐고 망설여졌다. 위생적으로 따져볼 때, 내 침이 닿은 사과를 그 순수한 아이 입에 먹이기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어찌 아이의 선한 호의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사과조각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어린 아기는 손을 다시 자기의 조그마한 입으로 가져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는 다시 조그마한 손을 내밀어 나에게 먹으라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래도 되나 걱정하면서. 준이는 그렇게 자기 한 입, 나 한 입을 반복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나이 많이 먹은 어른이라도 나이 어린아이들의 사소한 언행에 슬쩍슬쩍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런데 아무리 덩치가 몇 배는 큰 어른이라도 이렇게 세상 빛을 본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의 행동에 이리도 가슴 저릿한 감동을 받는 때도 있는 거로구나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준이는 남다른 아이였다. ‘위로 형이 둘, 누나가 둘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일상생활에서 보고 배운 게 이런 행동으로 나오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삼일 뒤, 아이 돌봄 선생으로 일하는 지인과 함께 한국 나이로 여섯 살배기 혁이를 처음 만났다. 예의 바르고 명랑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외동아들이라서, 혁이 엄마는 간식을 식탁 위에 챙겨놓고 나가시면서 선생님과 꼭 나눠 먹으라고 교육시켰다고 지인이 말했다.
그날 혁이는 처음 만난 내 앞에 깜뜨 비스킷을 먹으라고 내놓고, 말랑말랑한 사탕 한 개를 건네며 드시라고 공손히 말했다. 아이의 공손하고 의젓한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한편, 외동아들로 혼자 자라는 혁이의 얼굴을 보면서 며칠 전 만난 어린 준이가 떠올랐다. 앞으로 외롭게 자랄 혁이가 안쓰러웠다.
며칠 후 다시 혁이를 만났을 때, 그날은 오후에 수영을 하고 와서 배가 고팠는지 천 원 주고 사온, 갈색으로 맛나게 바싹 구워진 동그란 국화빵 다섯 개를 혼자서 야금야금 다 먹어치웠다.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맞아, 이게 진짜 어린아이의 행동이지. 준이가 남다른 거야. 인위적인 교육은 오래 못 가는 거야."
그날 오후 공원에서 만난 이웃집 할머니의 말씀이 귓전을 맴돌았다. “둘째 아이는 말도 빨리 하고 눈치도 빨라. 주워듣는 말이 많고 자극을 많이 받아서. 첫째들은 뭘 몰라.”
지금 이 순간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는 준이와 혁이를 떠올린다. 봄꽃처럼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참 궁금하다. 멀리서, 가까이서 오래오래 그들을 지켜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