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중中 “선과 악에 대하여” by 칼릴 지브란
그대들은 목적지를 향해 굳세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나아갈 때 선합니다. 허나 절뚝거리며 걸어간다고 해서 악한 것은 아닙니다. 절뚝거리는 사람이라도 뒤로 가지는 않습니다.
허나 튼튼하고 재빠른 그대들이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들은 절름발이 앞에서 절뚝거리지 않고는 그것을 친절로 여기지 않습니까.
그대들은 무수한 면에서 선하지만, 선하지 않을 때라도 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대들은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에 불과할 뿐. 가엾게도 수사슴이 거북이에게 빨리 가는 법을 가르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선이란 위대한 자아를 갈망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또 그 갈망은 모두 그대들 안에 있는 것
그대들 가운데 어떤 이에게 갈망은 바다로 힘껏 돌진하는 거센 물결이 이어서, 산비탈의 비밀과 숲의 노래를 싣고 흘러갑니다.
또 어떤 이에게 갈망은 구불구불 흐르는 약한 물줄기여서, 힘없어 흘러가다가 바닷가에 채 닿지도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허나 갈망이 큰 이는 갈망이 적은 이에게 “그대는 무엇 때문에 망설이며 더디게 가는가?”라고 다그치지 마십시오.
진실로 선한 이라면 헐벗은 이에게 “그대 옷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것이며,
집이 없는 이에게 “그대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는가?”라고 묻지도 않습니다.
“예언자의 선과 악에 대하여”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갈 때마다 나는 인간적인 고민에 빠졌다. 동정과 공감의 차이는 무엇이며, 상대가 삶에 대한 이해가 나와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속도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추면 맞출수록 나와 타인은 서로를 바라볼 때 괴로울 뿐이었다. 그때마다 읽어왔던 “선과 악에 대하여” 구절은 내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저 “선”의 길을 가기 위한 행동력이 필요할 뿐 각자의 속도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행동력을 기르기 위해 수사슴이 거북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