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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May 02. 2022

가끔은 빨간불이 조금 더 켜져 있기를 바란다

혼자 걷는다. 자주 걷던 길인데, 다르게 느껴진다. 을지로에서 청계천 지나 종로로 향한다. 탑골 공원에 줄지어 앉은 아버지 같은 사람들도 치고, 약주를 많이 해서 인사불성으로 누워 계신 어르신도 지나쳤다.


며칠간 휴식하며 마음을 가볍게 비웠더니 모든 게 평온하다. 옆으로 지나가는 중년 여성 뒷모습과 마주오는 젊은 연인의 밝은 미소도  반긴다.


햇빛은 빌딩 유리에 반사되어 도시 윤슬로 변하고 랑거리는 바람은 따듯한 봄기운에 데워져 모두를 따듯하게 만든다. 귓가에 들리는 노래 기분 좋은 웅성거림과 조화를 이루며 감성을 자극한다.


오늘 같은 날  따위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계속 걷고 싶은 줄 알았다. 무의식적으로 항상 걷던 곳을 빠르게 지나치다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멈췄다. 빨간불이다. 나무 그늘 밑에 서 있는데, 나를 따라서 모든 멈췄다.


빠르게 걸었더니 등에는 땀이 흥건했지만, 잠시 숨을 돌리자 금세 식는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마스크 사이로 들어와 코와 볼 사이를 만진다. 시원한 바람 손길에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편안하다. 조금 더 쉬고 싶었는데, 신호등 바뀌었다. 초록불이다.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멍하니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건너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잠시 멈춰서 불안해하는데, 신호등이 바뀌었다. 빨간불이다. 다시 편안해졌다. 


문득 횡단보도에 초록불만 기다리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호등은 건너기 위해 존재하므로 초록불을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말조차 듣고 싶지 않다. 


지금은 과거이고 진부하며, 멈춰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곳으로 가려고 했다. 만족하면서도 건너려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스스로 다졌다. 잠시 멈추거나 돌아가도 괜찮은데, 반대편을 보면서 초록불만 기다렸다. 건너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는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평온하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조금 더 쉬고 싶었는데, 다시 신호등이 바뀐다. 나를 끌고 가는 초록불이다. 마침 전화기도 울린다. 이제는 건너야  시간이다. 마주하는 초록불과 뒤에서 재촉하는 초록불 사이에서 움츠린 상태로 현실을 걷는다. 불안하다. 그래도 다시 걷는다.


가끔빨간불이 조금 더  있기를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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