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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밀라 Aug 07. 2022

전세에 대기업 다니는 김대리 이야기 #35.

하대리에게 상담하는 박 대리 편.

얼마 전 임 과장님께 조언을 얻어서 서울 아파트 분양권도 사둔 박 대리였다. 박 대리 신랑은 은행에 근무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대출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리고 박 대리 못지않은 짠돌이였다. 그런 신랑을 간신히 설득해서 아파트 분양권도 사뒀는데 앞이 캄캄했다. 

 

박 대리는 주식이 오르면 매도해서 짜잔~하고 신랑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신랑과 다르게 은행에 저축만 하는 게 아니라 주식 투자도 해서 돈을 벌고 있다고. 당신 아내 재테크하는 여자라고 말하면서 멋있게 아파트 값에 보태려고 했는데 다 엉망이 돼 버리고 말았다. 

 

수익보고 나온 걸 왜 다시 샀을까. 팔고 나왔을 때 그 종목명을 지웠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련이 너무 남아서 박 대리 눈에는 그 바이오 주식만 계속 눈에 들어왔으니까. 

 

박 대리는 매일 잠을 설쳤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의 연속이었다. 딸 수현이가 그렇게 치킨을 먹고 싶어 해도 참으라고만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치킨이나 실컷 사 줄 걸. 본인이 주식으로 날린 돈은 평생 치킨을 먹고도 남을 돈이었다. 

 

심란한 마음에 미팅룸에 먼저 들어온 박 대리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하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으며 하대리가 말한다. 

 

“박 대리, 나를 다 보자고 하고 무슨 일이야?”

 

“저… 하대리님… 제가… 사고를 쳤어요.”

 

엉? 사고? 무슨 사고? 사무실에서?”

 

아니요. 회사일은 아니고요…”

 

회사일이 아니야? 그럼 사고 칠 일이 뭐가 있어?”

 

“그… 하 대리님이 추천해주셨던 바이오주식 있잖아요…”

 

응. 박 대리 멋지게 수익내고 매도했잖아. 나 박 대리 얼마나 부러웠다고. 근데 그게 왜?”

 

“어휴… 말도 마세요. 그렇게 끝냈어야 했는데… 그걸 제가 다시 샀어요.”

 

뭐? 그걸 다시 샀다고? 언제? 그거 임상 3상 실패해서 엄청 떨어지고 있잖아. 한동안 매도도 안되던데? 그거 나도 안 팔려서 간신히 손절하고 나왔는데! “

 

네? 하 대리님 그거 손절하셨어요? 왜 제게 말씀 안 해주셨어요?” 본인만 손절하고 나오다니 박 대리는 하대리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박 대리는 그거 큰 수익내고 매도하고 나왔는데 내가 뭘 박 대리에게 말해. 다시 매수한 줄은 나도 몰랐지. 그리고 내 거 손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걸 얘기해. 박 대리 좀 이상하네. 그걸 또 왜 다시 샀어? 원래 매도한 주식은 다시 쳐다보는 거 아니야.”

 

하대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 대리가 무슨 심정으로 그 주식을 다시 샀을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대리 본인도 그랬으니까. 말이 쉽지 수익보고 나온 주식은 삭제하기가 어렵다. 그 주식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다시 들어가서 꼭 고점에 물리고 만다. 

 

그래서, 얼마나 샀는데?”

 

“어휴… 말도 마세요.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요즘 제가 죽을 지경이에요. 7000만 원어치 샀어요.”

뭐? 7천만 원? 박 대리가 그 큰돈이 어디서 났어?”

 

그게 더 문제예요. 5천만 원은 대출이고 2천만 원은 친정엄마에게 급히 빌렸어요. 물타기 하면 괜찮을 줄 알고요.”

 

하대리는 놀라서 박 대리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알고 있던 쿠폰 요정 박 대리가 맞나 싶었다. 사무실에서 조그만 업무 실수 하나 해도 절절매고 식은땀 흘리는 박 대리다. 그렇게 소심한 박 대리가 그 큰돈을 대출받아 하나의 종목에 투자했다니. 박 대리 성격에 자기를 원망하겠구나 싶었다. 

 

아니, 박 대리. 떨어지는 주식을 물타기 하면 어떻게 해. 언제까지 떨어질 주 알고. 그리고 주식은 대출로 투자하지 말고 항상 여유돈으로 투자하라고 하잖아. 이렇게 떨어질 때 버티려면 내 돈이어야 한다고. 박 대리 무슨 간이 그렇게 커?”

 

그땐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뭐에 씌웠었나 봐요… 흑… 흑… 저 어떡해요 하대리님…”

 

결국 못 참고 울음을 터뜨린 박 대리 앞에서 하대리는 망연자실했다. 큰 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물론 하대리 잘못은 아니지만 하대리가 권해준 주식으로 박 대리가 이렇게 됐다는 게 알려지게 되면 본인에게도 좋을 건 없었다.

 

“울지 마. 이렇게 된 거 울면 어떻게 해. 수습할 생각을 해야지. 신랑은 알아?”

 

아니요. 제 신랑 저보다 더한 짠돌이예요. 은행원인데 대출도 싫어하고. 말하면 엄청 싸울 거 같아요.”

 

그럼 말하지 마. 대출 이자는 감당할 수 있고?”

 

네. 대출이자는 감당할 수 있는데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도 손절한 거라 할 말이 없네. 일단 좀 두고 보자고. 내 생각은 조금이라도 반등할 때 조금씩 손절하고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아. 일단 친정엄마 돈부터 돌려드려야지.”

“네…. 그게 낫겠죠? 그냥 기다리는 건 어떨까요?”

 

대출이 아니면 그냥 기다리라고 하지. 근데 대출이라… 더 떨어질 수도 있고 오를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지. 오르면 다행이지만 더 떨어지면 큰 문제 아니야?”

 

맞아요. 휴…”박 대리는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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