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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로지 Oct 15. 2022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랑

주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일상을 꾸려가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내게도 사랑스러운 조카가 둘이나 있으니,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며칠 전 엄마와 병원을 다녀오며 느낀 감정들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간혹 사랑하지 않을 때도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 나이가 들면서 더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엄마는 내게 말한다. 본인보다 날 더 사랑한다고. 내가 살아있음에 안도한다고. 자기 자신보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가끔 그 문장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며칠 전 엄마와 병원 앞에 있는 설렁탕 집을 지나쳤다. 에세이에도 썼듯, 울면서도, 눈물을 꾹 참으며 먹던 그 설렁탕 집. 엄마는 그 설렁탕집을 보면 어떤 것이 생각날까.


하루는 입원이 길어지자 병원밥에 질린 나를 위해 엄마는 그 설렁탕을 사러 갔다. 그 사이 주치의 선생님이 새로운 결과를 가지고 병실에 찾아왔고,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쏟아내는 그 입을 한참 바라봤다. 왜 그렇게 이야기해요. 나는 선생님 환자인데. 좋은 말을 해줘야죠. 아무리 죽을 수 있어도, 그렇게 얘기하면 저는 어떡해요. 생각하면서. 뒤늦게 설렁탕을 포장해온 엄마가 테이블에 그것을 내려놓으면서 엉엉 울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후로 내게 그 설렁탕집은 수없이 먹었지만 그 장면으로 연결되는 음식이 되었다.


엄마는 내게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내가 길에서 헤맬 때 답을 제시해주는 사람은 아녔다. 고민을 털어놓아도 이리로 가는 게 더 좋겠다,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조언을 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걷는 길을 바라봐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늪에 빠졌을 때 별 고민 없이 그 속으로 들어와 주는 사람.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사랑스럽고, 강하고, 나의 편인 사람.


나는 자식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더 많으니 아마 그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의 분신 같은 아이에 대한 사랑. 하지만, 그 알지 못하는 사랑까지 모아 엄마를 사랑해야지. 엄마가 나를 사랑했듯이, 나도 엄마를 사랑해야지. 점점 엄마의 키가 줄어들고, 주름이 깊어져 가고, 흰머리가 너무 많아져 염색을 포기하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게 되는 일이 있어도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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