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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Jul 14. 2022

알고 있지만, 뷔페




그런 날이 있다. 한 가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싶지 않고,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다양하게 먹고 싶은 날. 그럴 땐 뷔페를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뷔페를 알차게 즐기고 오는 사람은 아니다. 그 육해공의 진미를 다 맛보기엔 내 소화기관이 작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자타공인 소식가 중의 소식가인 나지만, ‘조금씩 다양하게’ 먹기는 내 미식 철학에 딱 맞는 방식이기에 뷔페에 방문하는 것은 썩 즐겁다.


뷔페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양식과 한식, 일식, 중식 등 세계 각국의 음식 구역이 마련된 뷔페가 있는가 하면, 샤브샤브나 전골같이 즉석으로 만들어 먹는 주 요리는 기본적으로 있고 거기다 샐러드바가 소박하게 딸린 뷔페도 있다. 아예 떡볶이 뷔페, 피자 뷔페, 고기 뷔페처럼 특정 음식이 종류별로 있고, 그 음식과 어울리는 사이드나 반찬 격의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무한 리필’ 개념으로 변형된 뷔페도 있다. 내 경우엔 뷔페에 간다면, 주로 첫 번째 형식의 뷔페에 자주 간다. 이왕 이것저것 먹기로 한 김에 겹치는 메뉴 없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뷔페에 가는 이유이니까. 또 주식인 한식보다는 가끔 먹는 양식이 종류별로 갖춰진 뷔페가 좋다. 통통한 칵테일 새우가 들어간 크림파스타, 구운 감자와 베이컨으로 장식된 조각 피자, 약간 매콤한 로제 크림 리조또, 달짝지근하게 양념한 통살 치킨…… 접시를 채웠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음식들이다.


첫 접시는 샐러드나 수프 등으로 구성해 속을 달래 주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냥 맛있어 보이는 것을 바로 담는다. 어차피 그런 술수가 통하지 않는 소식가라서다. 샐러드와 수프도 결국 음식이고, 그것들을 첫 접시로 먹어 버리면 내 배는 어느 정도 차게 된다. 이 말인즉 각종 고기 요리, 피자, 디저트 등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갈 자리가 줄어들어 버린다는 뜻이다. 조금 더 먹어 보겠다고 꾀를 냈다가 도리어 손해를 보는 꼴이다. 심지어 난 스프를 싫어하고, 채소는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괜한 요령 피우지 말고, 정석대로 가는 편이 내겐 좋다.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먹는 것이다. 금방 배불러지는 건 늘 똑같으니까.


출처: pixabay, 저작권 없는 이미지


뷔페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건 디저트를 마지막에 몰아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르게는 두 접시째일 때부터 이미 디저트가 담기게 된다. 이 광경을 본 동행인들은 다들 왜 벌써 디저트를 담아왔냐고 한마디씩 한다. 짭짤한 것을 먹었으면 달콤한 것도 먹어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므로 주 요리에서 채운 염분을 디저트의 당분으로 중간중간 해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데리야끼 치킨, 고르곤졸라 피자,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먹었으면 와플을, 석류 푸딩을, 초코케이크를 먹는 것이 균형에 맞지 않나. 나는 다만 그것이 정확히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조금 교차될 뿐이다. 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해 평소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뷔페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늘 또 오자는 생각보다는 다음에는 단품 요리를 주문해 먹는 식당에 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뷔페는 일반 식당에서 식사할 때보다 과식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치른 값에 비해 음식의 질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가지각색으로 음식을 즐기고 왔으니 됐다고 위안 삼는다. 그 후 일반 식당만 줄곧 찾던 어느 날, 다시 이것저것 먹고 싶은 시기가 돌아온다. 여러 개를 시켜 나눠 먹는 것으로는 역부족이고, 한 분야가 아니라 전 영역의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뷔페가 전문 식당보다 맛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다양성에 빠져 또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은근히 실망하며 퇴장하고, 다음에는 단품 요리가 나오는 식당에 가겠다고 다짐한다.


알면서도 또 가게 되는 뷔페의 마력은 상당하다. 맛으로 100% 만족하며 문을 나선 뷔페는 진정 없었지만, 가기 전에는 굉장히 기대된다. 갖가지 음식을 담을 생각을 하면 몹시 들뜨고 설레기까지 한다. 막상 갔다 오면 아쉬움이 남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 다시 찾게 되는 아이러니가 뷔페에 있다. 2년 만에 뷔페를 찾고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일반 식당이 좋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언젠가 또 가겠지. 뷔페는 죽지도 않고 또 와서 화려한 라인업으로 침샘을 자극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뷔페에서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의 리스트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가? 본인 입맛대로 먹는 게 뷔페라지만, 위 용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흔히 먹지 않는 음식―집밥과는 거리가 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뷔페의 암묵적인 규칙인 듯하다. 그렇다면 뷔페에 언제나 존재하지만 담아오자마자 일행들의 싸늘한 눈빛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뷔페 블랙리스트’에는 무엇이 있는가 했더니, 쫄면과 잡채, 국수 등이 있단다. 예상대로 한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익숙한 음식일수록 ‘다양한 바깥 음식 맛보기’라는 뷔페의 본질에 어긋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 같다. 나 역시 조개구이 무한리필집에서 해쉬브라운을 담아왔다가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적이 있는데, 비릿한 조개만 먹다 보니 담백하고 짭짤한 감자가 먹고 싶어졌다면 꽤 일리 있지 않나……. 남긴 건 반성하고 있다. (한 조각만 가져왔는데도 다 먹기엔 너무 컸다.)


사실 남 이사 쫄면을 한가득 채워 먹든 어떻든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뷔페에서 무얼 골라 먹을지는 각자의 자유니까. 한때 뜨거운 감자였던 민트초코의 경우도 처음에는 재미있게 생각하고 웃어넘겼으나 점점 개인의 특정한 취향을 지나치게 업신여긴다는 느낌 때문에 뒷맛이 썼다. 저마다의 캔버스는 저마다의 색깔로 채우듯이, 뷔페 접시 또한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채울 수 있게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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