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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Nov 06. 2022

와플학과 박사 되기




나는 와플을 좋아한다. 얇고 바삭하며 시간이 지나면 말랑해지는(눅눅이 아니다) 길거리 와플, 커다란 설탕 덩어리가 씹히는 두툼한 와플, 크루아상 반죽으로 구운 크로플, 제과 회사의 버터 맛 와플 과자까지. 엔간하면 와플은 환영이다.


플레인보다는 생크림 와플이 좋고, 생크림 와플보다는 거기다 잼류, 과일, 각종 씹을거리까지 곁들여진 화려한 와플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와플은 딸기, 누텔라, 생크림이 들어간 와플이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누텔라의 짜릿한 단맛을 생크림의 부드러운 단맛이 감싸 주고, 물리기 전에 상큼한 딸기가 균형을 잡아준다. 여기다 분쇄 쿠키가 추가되면 씹는 맛까지 더해져 금상첨화다. 와플 자체에는 대단한 맛이 없어서 그런지 이처럼 들어간 재료가 많은 와플에 끌린다.


물론 와플은 사과잼+생크림 조합이 가장 인기고, 나 역시 그 맛을 좋아하지만 와플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들어가야 제맛인 것 같다. 어떤 와플 프랜차이즈에서는 무려 젤라또 아이스크림과 케이크가 들어간 메뉴까지 있는 걸 목격했는데, 나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구성이었다.


출처: pixabay, 저작권 없는 이미지


우리가 흔히 만나 보는 길거리 와플은 대개 미국식 와플이다. 앞서 쭉 이야기한 와플도 이런 와플을 가리키는 것이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듯 부드럽다. 또한 반죽 두께가 얇은 편이고, 달콤한 토핑을 더하는 것을 넘어 아예 식사처럼 먹기도 한다고. 시장과 지하철, 시내의 와플 가게에서 즐기는 K-와플의 효시는 미국식 와플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와플의 고장 벨기에의 와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보면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플이 있는데, 브뤼셀 와플은 반죽에 머랭이 들어가 푹신하고 부드럽다. 직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보통 과일과 시럽 등 다양한 토핑을 얹어서 먹는다고 한다.


반면 리에주 와플은 반죽 자체에 펄 슈가라는 설탕 덩어리가 들어가 있다. 때로는 겉에 엷은 아이싱도 입혀져 있어 따로 토핑을 더하기보다는 와플 자체의 맛으로 먹는다. 브뤼셀 와플에 비해 빵이 단단하고 밀도 있는데, 머랭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탄력 있게 씹히는 빵과 오독오독 부서지는 설탕 결정 덕에 매력적인 식감을 자랑한다. 모양도 다르다.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다.


출처: pixabay, 저작권 없는 이미지


가끔 급식에 나오던 생크림와플을 기억하는가?식물성 생크림을 가득 얹어 나오던 둥근 와플이 바로 리에주 와플이다. 뻑뻑해서 싫어했다고? 그럴 수 있다. 공장 빵이라 그렇다. 반죽이든 펄 슈가든 빈약한 건 당연하다. 와플의 고장 벨기에에서 먹는 '진짜' 리에주 와플은 달라도 뭔가 다를 거다. 나도 안 먹어 봤으니 장담은 못 하지만 말이다.


또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지만 아주 얇고 바삭해 과자 같은 와플 사이에 캐러멜 시럽을 샌드한 네덜란드의 스트룹 와플이 있다. 사이의 캐러멜 에 아주 쫀득쫀득하다고 한다. 홍콩식 와플은 와플 전문점에서 종종 보인다. 격자 무늬 대신 부항을 뜬 것처럼 둥근 무늬를 가진 와플을 먹어 봤다면, 당신은 홍콩식 와플을 먹어 본 것이다. 홍콩식 와플의 또 다른 특징은 연유다. 반죽에 들어간 연유는 와플을 한층 달고 부드럽게 만든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크로플이 한창 인기몰이를 할 때가 있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와플계의 혁명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 속에 그도 예전만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느 날 크로플 전문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곳에서 여러 가지 맛 크로플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크로플에도 애플시나몬, 딸기생크림, 오레오 등 각종 토핑이 올라간다니 사 먹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스에 포장해 가지고 와서 하나씩 맛을 보았다. 역시나 맛은 있었는데, 어딘가 부족한 느낌. 뭘까? 뭐가 아쉬운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부족한 게 아니다. 넘치는 거다.


자고로 와플의 화려한 토핑은 존재감이 미미한 얇은 와플과 함께일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런데 버터 향이 풀풀 나는 쫄깃한 크로플 위에 달콤한 생크림과 과자, 혹은 묵직한 크림치즈, 혹은 과일과 진득한 시럽, 잼을 올려놓으니 왠지 과하게 느껴진 것이다. 크로플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메이플 시럽이면 충분하다. 아몬드 슬라이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긴 하다. 아무튼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크로플은 특히 과유불급인 것 같다. 무언가 더 얹으면 얹을수록 맛이 애매해지니까. 이것저것 조합해 듬뿍 얹어 먹는 맛이 있는 길거리 와플과는 다르다.


출처: pixabay, 저작권 없는 이미지


우스갯소리로 '무슨 와플학과 전망이 좋다', '이 메뉴 정도면 수석 가능하다'라는 말로 와플에 대한 맛 철학을 논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만약 와플 전공이 진짜 있다면 나도 박사 논문을 쓰는 열정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와플의 역사가 어떻고, 어떤 와플이 언제 생겨났는지, 가장 잘 어울리는 토핑은 어떤 것인지 진심을 다해 연구할 자신, 완전히 있다. 심심할 때마다 이런 유의 생각을 자주 한다. 허무맹랑하지만 즐거운 상상. 기다림을 견디는 데 효과적이다.


한편 이런 상상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조금 더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다.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당장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한 고민만 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때로는 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꼭 필요하지 않은 생각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수많은 법칙 그리고 발명의 원천이 우연과 장난과 실수에서 발견되었듯이, 우리의 더 많은 (당장에) 쓸데없는 생각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 소설, 그림, 영화를 비롯한 문화적 산물도 마찬가지.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느냐? 그렇지는 않지만, 은유로써 메시지를 전하고,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고, 다양한 관점을 취할 틈을 마련하며 한번 사는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니 와플학과 석사, 박사, 교수직까지 취득하는 나의 비밀스런 상상은 계속된다. 요즘은 아이스크림에 푹 빠져 아이스크림의 유형과 분류 기준을 찾아보고 있는데, 어딘가 '써먹으려고' 하지 않는 공부가 가장 재미있다는 걸 느낀다. 어쩌면 와플학과 박사직이 실제로 있었다면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없을 때 잘해야지 하는 요상한 다짐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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